지난 3일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이 열렸다. 4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단일 규모 세계 최대 e스포츠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전. 하지만, 한국팀은 없었다.
결승에서는 유럽팀 ‘프나틱’과의 대결 끝에 중국의 ‘인빅터스 게이밍’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5년 연속 우승국이라는 타이틀에 빛나는 한국팀은 최종 성적 8강이라는 성적표로 대회를 마쳤다. 종주국이자 세계 최강이라 불렸던 한국 e스포츠의 시대는 여기서 저물어가는 것일까?
5일 한국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아 대한민국 e스포츠의 새 심장 ‘LoL PARK(이하 롤파크)’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해외의 e스포츠 팬들과의 인터뷰는 아직 한국의 게임 팬들이 아직 e스포츠 종가의 자부심을 마땅히 가질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e스포츠의 성지이자 외국인의 첫 관문 ‘롤파크’, 인프라 수준은 ★이 5개
9월 17일 정식 개장한 롤파크는 종각역과 맞닿은 오피스타워 ‘그랑서울’에 위치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에서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앞으로 한국의 LoL 프로리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가 열릴 한국 e스포츠의 성지로 평가된다.
‘스타디움’이 아니라 ‘파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LoL이라는 콘텐츠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한국 최상위 프로리그 LCK가 열릴 ‘LCK아레나’,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라이엇PC방,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라이엇스토어’가 있다. 이밖에도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빌지워터’, LCK 선수들의 유니폼과 선수 피규어, 게임 캐릭터 조각작품 등의 관람 가능한 시설물들도 곳곳에 있다.
롤파크의 시설은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롤파크의 핵심인 경기장 ‘LCK아레나’는 입구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장엄함마저 느껴진다.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구조의 경기장은 무언가를 던지면 선수들의 뒤통수를 맞출 수 있을 듯이 관중석과 경기석이 가깝다.
‘라이엇PC방’은 PC방이란게 생겨날 무렵부터 PC방을 다녀본 기자가 지금까지 가본 그 어떤 PC방보다도 퀄리티가 높았다. 다만 가격이 40분에 1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었다. 또한 카페 ‘빌지워터’는 유럽 성당을 연상시키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그랑서울의 탁 트인 풍경이 어우러져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카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아본다면 역시 작은 규모다. 이곳은 e스포츠 종주국인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게임종목의 최상위 프로리그가 진행되는 곳이다. 하지만, 400석의 경기장 관중석, 101석의 PC방은 이 시설의 상징성과 위상을 감안하면 다소 소박한 규모라고 느껴졌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김치LoL’ 맛보러 찾아오는 사람들
롤파크에서서 기자는 홍콩, 중국 등 이웃나라부터 말레이시아, 베트남,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 이역만리 먼나라에서 온 이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세계 각지의 LoL 팬들이 찾아오는 e스포츠의 메카, 과장이 아닌 문자 그대로 의미의 ‘성지’라는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롤드컵 결승을 보러 한국에 온 김에 롤파크도 들렀다는 마리옹 푸아리에(23)는 ‘피넛’ 한왕호 선수의 팬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선 이런 형태의 e스포츠 경기장은 없을 뿐 아니라 도입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다며 부러워했다. 그는 “비록 이번 시즌 약세를 보였더라도 세계 최고의 리그는 LCK가 틀림없다. 2019 롤드컵 결승에는 한국팀 ‘KT 롤스터’와 ‘킹존 드래곤X’중 한 팀이 반드시 올라가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골수 ‘김치LoL’ 팬이었다.
‘라이엇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외국인은 너무 흔해서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PC방을 와봤다는 베트남에서 온 텅(23), 그리고 피씨방 로그인 아이디는 여권번호를 입력하는 것이냐고 묻다가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은 스페인 LoL팬 하미에 가르시아(29)도 모두 롤드컵 관람과 함께 e스포츠 성지를 순례하러 온 사람들이다.
뒷 편에서 게임을 즐기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두 게이머는 “Are you XXXXXX kidding me?(XX 지금 장난해?)”라던가 “Mother”라는 단어가 포함된 어떤 문장을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김치LoL’은 게임 중 소통방식까지 함께 수출되는 것 같다.
이날 실제 한국의 e스포츠 수출 현장이 눈에 포착되기도 했다. 여행사에서 근무한다는 한국인 관광가이드 A 씨는 LoL이 뭔지 오늘 처음 알았지만, 일 때문에 롤파크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e스포츠 사업을 일본에도 도입하고자 탐방을 원하는 일본 사업가들을 안내하기위해 롤파크를 찾았다. 이어서 서초구 ‘넥슨 아레나’도 함께 둘러봐야한다는 A 씨는 현재 일본의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한국의 e스포츠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북미 캐스터 ‘대시’ “e스포츠 종가 자긍심 가져라, 졌지만 도약의 밑거름 될 것”
이날 기자는 e스포츠계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유명한 인물을 만났다. 북미 LoL 프로리그인 LCS NA를 중계하는 캐스터 ‘대시’(DASHㆍ27세, 본명 제임스 패터슨)’였다. 전 세계 LoL팬들의 기나긴 포토타임을 기다린 끝에 국내 언론사 최초로 ‘대시’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연인이자 라이엇게임즈 본사 아트디렉터인 채즈니 라투가(25)와 함께 롤파크를 찾은 ‘대시’는 롤드컵 결승에서 한국팀을 보지 못해 실망한 기자에게 위로의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최고로 생각하는 LCK이고 e스포츠 종가의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격려했다.
그는 “한국의 e스포츠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포맷”이라며 “리그전에서 팀마다 경기를 1회 진행하는 북미 LCS와 달리 LCK는 매 경기마다 3회에 걸친 시리즈를 진행하는 것이 부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 최초로 e스포츠를 발명한 나라이자 20년이라는 업력이 묻어나는 한국 시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프로게이머의 선수 생활을 돕는 코칭 스태프의 개념과, 선수들이 숙소에서 합숙하며 연습하는 한국식 e스포츠 트레이닝 시스템은 이미 북미에 상당부분 도입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 LCK의 부진에 대해선 한국 e스포츠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탄생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e스포츠 문화의 종주국인 한국에서는 곧 제2, 제3의 ‘페이커’ 이상혁과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할 것”이라며 “이번 시즌의 부진에서 겪었던 시련은 또다른 ‘페이커’들에게 하나의 자극제가 돼 다시 LCK를 왕좌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말을 맺으며 ‘대시’는 한국 e스포츠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종주국 대한민국의 e스포츠 업계의 밝은 미래를 그의 말 한 마디만을 믿고 공감한 것은 아니다. 긴 시간 쌓아온 업력과 압도적인 수준의 경기장 설비, 그리고 이를 찾는 국내외의 수많은 e스포츠 팬들의 모습에서야말로 게임업계의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