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회장이 사퇴한 코오롱그룹은 집단 경영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회장의 공백에 대비해 차세대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한 경영 협의체를 신설해 4차 산업 혁명에 걸맞은 유연한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코오롱그룹은 28일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신설했다. 코오롱은 그동안 이 회장이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향후에는 이 위원회를 통해 그룹의 아이덴티티, 장기 경영방향, 대규모 투자, 계열사간 협력 및 이해 충돌 등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하게 된다.
코오롱의 집단 경영 체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유석진<사진> ㈜코오롱의 대표이사가 있다. 후임 회장을 선임하지 않은 코오롱이 지주사 중심의 계열사 책임 경영 강화의 방향으로 경영 체제가 개편되는 만큼 지주사의 수장인 유 대표를 주축으로 집단 경영이 이뤄질 전망이다. 유 대표는 ‘원앤온리 위원회’의 의장을 맡으며 경영 협의체를 이끌 예정이다.
유 대표는 지난해 50대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돼 코오롱의 세대교체를 이룬 인물로 꼽힌다. 유 대표는 2013년 코오롱 전무로 영입돼 전략기획 업무를 맡아오다 지난해 대표이사 부사장에 발탁 승진했으며, 2019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유 대표는 급변하는 대외 경영환경 속에서도 회사와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내부 체질강화,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투자·금융, 국제 업무 분야에서 일한 만큼 코오롱그룹 내 전략 사업의 혁신과 신사업 추진에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코오롱그룹은 ‘세대 교체’ 작업도 본격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아들 이규호<사진> 상무가 전무로 승진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이 COO는 그룹의 패션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한다. 경영권을 바로 승계하지 않았지만, 주력 계열사에 주요한 임무를 맡으며 경영 수업을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1984년생인 이 전무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차장으로 입사해 구미 공장에 배치돼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14년엔 코오롱글로벌로 자리를 옮겨 건설현장을 관리했고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로 복귀하면서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어 지주사 ㈜코오롱의 상무로 승진해 전략기획을 담당하다 2019년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그룹 관계자는”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토록 한 것” 이라며 “그룹을 이끌 때까지 경영 경험과 능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과정을 중시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전무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이 회장 역시 40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전례를 볼 때 머지 않아 경영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회장은 지난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한 뒤 12년만인 1985년 임원으로 승진하고 이후 1991년 부회장에 이어 1996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최근 LG, GS를 중심으로 4세 경영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도 코오롱 세대교체에 힘을 싣고 있다.
한편, 이웅열 회장은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의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회장은 회장직에 오른 뒤 노사 상생 문화를 정착시킨 것은 물론 대졸 신입사원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채용하는 등 양성평등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도 여성 임원 4명이 한꺼번에 승진하는 등 여성인력에 대한 파격적 발탁이 이뤄졌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1999년에 미국에 ‘티슈진’을 설립해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동종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개발에 나서며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도 탁월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회장은 1999년부터 티슈진을 통해 인보사 개발에 돌입했다. 코오롱은 인보사를 통해 그동안 통증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방법 말고는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었던 골관절염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이 회장은 “내 인생의 3분의 1을 인보사에 쏟아 마치 넷째아들 같다”며 “0.00001%의 가능성 속에서 태어나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