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두 가지가 해결되기 전까지 대통령을 안 만날 것입니다."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하나뿐인 아들의 장례를 아직 치르지 않았다. 아들 사고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 요청도 계속 거절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을 만나면 아들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뤄지고 있는 모든 조사가 멈춰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가장 원하는 것은 설 연휴 전에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김 씨는 올해 4월 예정된 재보궐 선거의 바람을 타고 김용균법과 관련된 모든 이슈가 이대로 묻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와 '전국 5차 고 김용균 범국민 추모제'가 열리는 19일까지 문 대통령으로부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1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에서 만난 김 씨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에서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날은 1990년 이후 30년 만에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공포된 날이다. 개정법은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진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김 씨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보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벌금이나 형에 상한선만 있고, 하한선이 없다는 것이에요. 영국은 이와 비슷한 경우 벌금 하한선을 10억 정도로 규정해두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만큼 법이 세져야 안전해지지 않겠어요? 대통령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비정규직 하기 좋은 나라'일 뿐입니다."
이번에 공포된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 사망사고를 5년 내 2차례 이상 초래할 경우, 형벌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 법인에 대한 벌금형 상한도 현행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지만, 하한선은 규정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개정 산안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 16일 전까지 하한선 관련 내용을 법안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부발전소는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고, 증거도 인멸했습니다."
고(故) 김용균 씨는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협력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낙탄을 제거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에게는 헤드랜턴이나 손전등 같은 필수 장비는 지급되지 않았고, 근무 당시 '2인 1조'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부발전소는 회사 측의 잘못은 없고, 작업 매뉴얼을 지켰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서부발전이 사고의 책임을 회사가 아닌 아들에게 돌리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
"회사는 근무 도중 신호가 울리면 용균이처럼 무작정 가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용균이 동료들은 신호가 울리면 바로 가서 점검해야 한다고 증언했거든요? 그때서야 회사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서부발전소가 사고 현장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고, 작업 환경을 조작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정황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특히, 사고 발생 시 벨트를 긴급 정지시킬 수 있는 안전제어장치인 '풀코드' 스위치와 연결된 와이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지만, 사고 이후 노동부가 검사에 들어가자 와이어를 급히 정비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부발전소 최고 관리자는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요."
서부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지금까지 총 12명이다. 김 씨는 서부발전소 최고 관리자는 12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과 관리한 사람 모두 살인자라는 것. 일반 서민들은 사람 한 명 죽이면 무기징역을 살기도 하는데, 높은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도 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느냐고 분노했다.
김 씨가 원하는 것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노동 환경이 안전한 작업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매일 노동자들의 사고 뉴스가 들려오지만 다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발전소에서 계속 희생자가 나왔지만, 이제는 나라도 열심히 싸워서 더는 용균이 같은 아이들이 죽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며칠전 김 씨는 취업을 앞둔 특성화고 학생들을 만났다. 김 씨는 "특성화고에 진학해 취업을 앞둔 여러분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굴레가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균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적 죽음을 당했지만, 여러분들만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꼭 잘 알아보고 직장을 선택하기를 바란다"라는 말도 전했다. 제2의 김용균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김 씨의 마음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조지 오웰은 그의 저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탄광지대를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김용균 씨가 죽었던 발전소의 작업 환경과 흡사하다. 컨베이어벨트는 김 씨를 삼켰고, 사람들이 김 씨를 구하러 갔을 때는 그가 떨어뜨린 휴대전화의 희미한 불빛이 탄진에 가려 간신히 그의 위치를 안내하고 있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노동을 이어가는 이 세상의 김용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과 매뉴얼 준수, 이 두 가지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노동권에 대한 자각이다. 김 씨는 제2의 김용균이 나오지 않기 위해, 아들의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추진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동권과 관련된 교육이 고등학교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건강도 스스로 지켜야 하는데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몰라서 못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구의역 사고 이후 작업 환경이 나아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은 것처럼, 내가 싸워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