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분홍 ‘젠쿱(제네시스 쿠페)’은 멀리서도 “어~ 데저트이글 왔구나”라고 알 수 있는 그만의 시그니처다.
24일 만난 카튜버(자동차 유튜브 영상 제작자) 데저트이글은 인터넷 방송 탄생 시절부터 함께 한 인물 답게, 차와 사람 모두 이색적인 아우라가 가득했다.
자신의 인터넷 방송 예명이 쓰여진 모자를 쓰고, 그 예명을 자동차 리어스포일러(뒷 날개)에도 새기고 다니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는 건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라면 방송인 노홍철 정도랄까.
◇“남의 차 욕을 왜 해요. 함께 차를 보며 즐거워야 하는데”
“제 영상의 특징은 '3무(無)'에요. 무계획, 무대책, 무책임.”
말 그대로다. 데저트이글의 유튜브 채널은 카테고리를 종잡을 수 없다. 애초에 그의 채널은 설명부터가 ‘각잡힌 리뷰’, ‘각 안 잡힌 리뷰’, ‘힘빡준 빡센 자동차리뷰’, ‘설설대충하는 리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잡힌 리뷰’에 해당하는 시승기나 서킷주행 같은 영상은 당연히 있다. ‘각안잡힌 리뷰’에는 △초보에게 운전 가르치기 △새차 뽑기 △수동변속기 운전법 강의 △자동차 개념추천 △물피도주 뺑소니 잡기 △세차장 리뷰 △전국 기름값 비교 △카푸어 모임 △미녀와 고급차 타고 먹방하기(?) 등이 있다. 말하자면 ‘무범주’에 가까운 채널이다. 이같은 난맥상을 본인은 ‘데저트이글의 재미있는 자동차 휴먼드라마’라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했다.
“매번 정해진 틀이 있으면 1~2달은 괜찮더라도 연 단위가 되면 시청자들이 질릴 수가 있으니까요. 실은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고, 3무 정신에 입각해 영상을 만들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다만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데저트이글 채널에는 3무 말고도 꼭 지키고 있는 철칙과 철학이 있다. 그것은 ‘남의 차 욕하지 않기’다.
“저라고 왜 ‘거르는 브랜드’나 싫어하는 차가 없겠습니까. 그런 차나 브랜드에 대해 초기엔 잠시 비판도 했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굳이 차나 브랜드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그 차 타시는 분들이 들으면 얼마나 기분 나쁘시겠어요. 제 채널은 ‘재미있는 자동차 휴먼드라마’여야 하니까요. 보고 기분 나빠지면 안 되잖아요.”
‘거르는 브랜드’ 얘기 나오면 힙한 카튜버에게 물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주제가 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모두의 천덕꾸러기. 애증의 ‘그 브랜드’! 바로 현대기아차다.
애마가 ‘젠쿱’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그는 현기차 안티, 소위 말하는 ‘현까’가 아니다. 오히려 현기차가 평가 절하돼 있는 브랜드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말하자면 ‘현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10년 전엔 솔직히 욕먹을 만한 차도 많이 내놨죠. ‘원가 절감’. 일본, 독일 명품 브랜드에서도 하는 원가 절감이지만 옛날의 현기차는 좀 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본 현기차, 특히 그가 좋아하는 현대차는 이제 달라졌다고.
“제가 국산차도 외산차도 타봤지만, 내수를 기준으로 할때 현대차는 동급의 세그먼트에서 크기나 실내 등을 비교해보면 차의 가성비가 외산 브랜드에 비해 탁월한 편이라고 봅니다. 차는 사면 끝이 아니라 계속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 되는데, AS나 보증수리의 우월함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강점이기도 하구요. 저에게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현대차 G80 중 선택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G80입니다.”
현대차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누구나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얼마 받았냐’는 것. 데저트이글은 자동차 리뷰에 돈을 받고 리뷰를 해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저는 진심으로 현대차를 좋아해요. 예전엔 영혼없이 판매량만 늘리던 현대가 자신들의 색깔이 담긴 차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팅어'나 'G70', '팰리세이드' 같은 차 보세요. 저는 마음속에서 ‘팬심’이 자라납니다. 아직 자동차 광고 제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받아 소비자에게 이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자동차 광고 제안이 들어온다해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가 최근 일본 브랜드 마츠다의 ‘MX5’를 직수입으로 뽑았다는 사실은 함정이다. “잠시 소개하면, MX5는 수동변속기에, 가볍고, 운전이 재밌고, 가격이 적당한 차입니다. 근데 MX5 말고는 이 모든 걸 만족하는 차가 없어서 이걸 샀습니다. 현대차는 ‘할 수 있는 데 안하는’ 점이 가장 아쉬워요. 이런 차 만들 기술력 충분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좀 더 기다려봐야죠.”
“아, 근데 일본차 샀다고 영상 댓글에 친일파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우동이랑 초밥 먹고, 원피스랑 드래곤볼 보고, 소니랑 캐논 쓰는 사람이 몇 명인데…. 일본거 쓰면 친일파라고 하는 건 좀…”
◇인방의 화석, 데저트 이글
그는 11년차 인터넷 방송인이다. 데저트이글이 본격적으로 카튜버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 경이지만, 그는 2006년 아프리카TV가 ‘W플레이어’라는 시범서비스를 할 때부터 게임 방송을 켜왔던 인터넷 방송인이기도 하다. 소닉, 유신이 유명 인터넷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이 때는 인터넷 방송의 창세기였다.
도티, 진워렌버핏, 소희짱, 액시스마이콜, 김성회, 현진영, 홍인규… 흥망성쇠가 있었던 수많은 BJ와 연예인까지 그와의 합방을 거쳐갔다.
2010년 그는 해외에서 막 서비스하기 시작한 ‘도타’류 카피게임을 방송에서 소개한다. “도타 따라서 만든 쓰레기 게임 왜 하냐”는 시청자들의 비방에 그는 “여러분은 2년 뒤 모두 이 게임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ㆍ이하 롤)’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로이조, 클템, 꿀탱탱, 이상호, 매드라이프 등등 현존하는 모든 롤 BJ의 조상인 셈이다.
라일락, 막눈, 모쿠자, 매드라이프, 빠른별, 매니리즌, 비닐캣 같은 1세대 프로게이머들 대다수와의 플레이 경험도 있다. 그때는 너무 좁은 바닥이라 큐 돌릴때마다 만나는 사이였다고 한다. 만나면 보통 버스 뒷좌석에 편안히 승차(?)했다고.
“같이 롤하던 친구 중엔, 게임하다가 ‘와!! 게임 ○같이 하네!!’하고 열 받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의 상대 플레이어 한 명이 기억에 남아요. ‘고전파’라는 아이디를 쓰던 고등학생이었죠.” 당시 고등학생이던 이 게이머의 이름은 ‘이상혁’. 장차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페이커’라는 이름을 남기게 될 남자였다.
국내 최초의 롤 대회인 WCG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중계를 하기도 하는 등 초기 롤 e스포츠 산업의 정착에도 기여한 바가 많지만, 결국 질려서 롤을 접었다. 하지만, 롤이 대세가 된 지금까지 롤 방송을 중단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지금의 롤계에서 잊혀진 것에 대해 아쉽거나 서운하지는 않아요. 제게는 제게 맞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롤계에서는 ‘이런 게임도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역할이었죠. 제가 애초에 진중한 중계를 오래할 타입도 아니구요”
아프리카TV의 개국과 함께한 데저트이글이지만,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는 아프리카TV에 설움에 가까운 강한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KOO TV라는 신규 인터넷 방송 플랫폼 론칭 때 많은 BJ를 스카웃했습니다. 상당수가 건너갔고, 이후 KOO TV는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죠. 위기를 경험한 아프리카는 돌아오는 모든 BJ에게 최소 2년 간 아프리카 이외의 모든 플랫폼의 방송 송출 금지와 허가 없는 SNS 글 게재를 금지하는 서약서를 받았어요.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영구정지를 받았죠. 물론 저도 다른 플랫폼으로 방송 송출하면 됩니다. 그래도 제 20대 모두를 갈아넣어 함께했던 아프리카 TV였는데, 사과 한 마디도 없이. 문자와 카톡으로 영구정지 처분이라니. 이게 정말 섭섭하지 않을 수가 없죠.”
어렸을 때 군인을 꿈꿨던 소년 이상길은 커서 유튜버 데저트이글이 됐다. IT회사도 광고대행사도 다녀봤는데, 정신차려보니 카튜버 데저트이글이 돼 있더란다. 인생은 떠내려가는 것이라더니.
“제 채널의 3무에서 무책임은 이제 폐기하려고 해요. 최근에 세월호와 천안함 유족들을 비하한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된 유튜버도 있었잖아요. 인플루언서도 영향력만큼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시대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났던 격동기의 인터넷 방송과 청춘을 함께 했고, 또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남자 데저트이글. 그가 철이 들어가는 과정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과 겹쳐 보인다. 34세의 철이 든 남자 이상길은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인간 이상길의 목표를 묻자, “생존”이라는 두 글자가 돌아왔다.
“인터넷 방송 오래하면서 느꼈는데. 짧고 굵게 가는 사람 정말로 많이 봤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먹고 살던 사람들, 모두 뿌린 대로 거두더라구요. 제 목표는 순탄하게, 가늘게, 길게! 웃으실 게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데요.”
감수 : 이투데이 구성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