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내가 아는 공실만 7~8개...앉아만 있으면 임차인 못 찾아"
국내에서 가장 비싼 땅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비싼 땅, 서울 '명동'. 비싼 땅값만큼 높은 임대료를 주고도 이 곳에 매장을 내는 이유는 그만큼 매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명동을 덮친 악재는 '명동다움'을 무색하게 한다.
공시지가가 발표된 12일 오후 찾은 명동 거리는 명동역 6번 출구 앞 공시지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을 중심으로 길게 뻗는 명동대로만이 그나마 명동다웠다.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으로 가득 찬 몇년 전 광경은 아니었지만, 늘어선 노점상에 모여있는 사람들과 화장품 가게 앞을 서성이는 고객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명동대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명동대로에서 갈라지는 길을 따라 형성된 골목 상권은 이미 죽은 상권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동에서 7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사장 A 씨는 전단을 돌리느라 추운 날씨에 가게 밖을 서성였다. 그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 손님이 뚝 끊겼다가 좀 나아지나 했더니 다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터졌고 그 이후로 계속 내리막"이라며 "올해 들어선 매출이 거의 마이너스다. 그런데도 임대료는 그대로다. 임차인들이 하도 힘들다고 하니까 일부 건물주들은 계약을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장사 안되니 몇 개월만 임대료를 덜 받고 장사 잘 되면 다시 정상으로 받겠다는 식의 구두 계약을 맺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잡화 가게를 운영 중인 B 씨는 "아무래도 사드 문제 이후로 관광객이 계속 줄고 있다. 이쪽 골목이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진 않았는데 요새는 한산하다. 설날 지나니까 그나마 거리에 사람이 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사는 여전히 잘 안된다. 자꾸 불안해서 가게 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브랜드 의류 상점도 사정은 녹록지 않다. SPA 브랜드 '탑텐'의 점장 C 씨는 "단체 관광객은 물론, 개인 관광객까지 줄어 지난해는 전년 대비 20~30% 외국인 손님이 줄었다"며 "특히 올해 1월부터는 중국에서 전자상거래법이 시행되면서 대량구매 고객의 문의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줄어든 관광객만큼이나 상인들의 목을 조이는 건 요지부동 높은 임대료다. 이곳 사정을 알아보려 명동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10곳을 돌아다녔지만 2곳을 제외하고 모두 문이 잠겨있었다. 연락이 닿은 한 공인중개사 D 씨는 "이 동네 공인중개사들은 발로 뛰지 않으면 임차인을 찾기 어렵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오길 기다리는 공인중개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왜 임차인을 찾기 어렵냐는 질문에 그는 "명동 상권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눈으로 보면 알지 않느냐. 그렇다고 임대료나 보증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들어올 사람이 없다. 건물주들은 한번 낮춰 받으면 다음에 올리기 어려우니까 당장 공실로 놔두는 거다. 내가 알고 있는 명동 지역 공실만 7~8개"라고 설명했다.
명동에서 신발 판매장을 운영하는 E 씨는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처럼 인건비 문제도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임대료”라며 “보다시피 장사가 이렇게 안 되도 임대료는 그대로고,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국인 발길이 끊긴 것도 문제다. 명동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성지로 부상한 이후 내국인들은 홍대, 강남 등으로 발길을 돌린 지 오래다. 명동 상권 부활의 열쇠는 '외국인 관광객'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유커 대신 늘어났던 따이공(중국 보따리상)들이 전자상거래법 개정으로 세금 부담이 커지자 한국 쇼핑 관광을 크게 줄인 상황에서 명동 상권이 살아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6년 사드 이슈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줄면서 급격히 위축된 명동상권은 올들어 중국 전자상거래법까지 악재로 작용해 상권 침체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