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편 이런 모든 한반도 안보위기 해소의 열쇠는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가 그러했듯이,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미국 손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의 북한 도발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떤 대응전략을 설정할 것인가가 한반도 평화체제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안보 비용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북핵위기를 포함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국제안보질서를 바라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노력이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전략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북핵위기에 대응한 우리 경제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첫걸음이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및 동아시아정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근까지의 전통적인 미국의 정책 노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노선은 매우 분명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누차 밝혀졌듯이, 트럼프가 정치에 참여한 계기는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고유한 정치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천직인 리얼리티쇼를 통하여 자신의 부동산 사업의 외연을 늘렸던 것처럼, 미국 대통령이란 리얼리티쇼를 통하여 트럼프 부동산 기업군의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것이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반복적으로 드러난 탈세와 성추행 등으로 도덕적 파탄자에 가까운 트럼프를 미국 유권자들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미국의 기존 정치경제적 질서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안정적이었던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 내 지지도가, 놀랍게도 트럼프의 재선에 베팅을 하는 정치적 투기세력이 늘고 있을 정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미국의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향유하기에는, 분노할 줄만 알았지 그 대안을 찾기 위한 진지한 성찰을 할 능력이 없는 집단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이런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교활하게 이용할 줄 아는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무역정책에서는 보호무역, 대외안보정책에서는 극우적인 대립구도를 선택하면서 견조한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즉 미국 내 소득 재배분 정책의 실패를 자유무역의 결과로 돌리고 자신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집단안보체제를 무너뜨린 결과 초래된 불안정성을 이란과 북한 등 일부 국가에 뒤집어씌운 후, 트럼프의 개인적 깜짝쇼로 이런 위기국면을 타개하고 있다는 리얼리티쇼 구도가 놀랍게도 미국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보여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정치철학 자체를 부정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목표는 단 하나다. 즉, 다가오는 대선에서 득표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이 곧 최고-지선의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에 기반한 군사적 갈등구조의 확대 재생산과 그에 따른 군비경쟁과 군수산업 육성에 정치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 북핵과 같은 안보위협의 제거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와해되는 위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두 나라 모두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독재세력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이 ‘묻지마 전쟁’을 통하여 국내 지지세력을 공고히 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 정권 사이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변함없이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하는 북한의 모습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직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 못지않게 그 정치적 안정성이 흔들리는 트럼프 행정부 역시 북한만큼이나 갈지자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서 북한과 국내 극우세력 모두에게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조롱당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가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오지랖 넓은 중재’는 재주나 요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심지어 북한이 보기에도, ‘베낀 기술에 기반한 조립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비웃음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미국도 할 수 없는, 혹은 최소한 ‘감탄할 수 있는 산업기술력’을 갖추는 노력이 있을 때, ‘오지랖 넓은 중재’는 조롱이 아닌 실질적 평화를 낳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