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사가 불법이면, 국민도 불법이다.”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근처. 문신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 손팻말을 들어 올렸다. 1000여 명(집회 측 추산)의 문신사들은 본업을 잠시 내려놓고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이들의 바람은 “우리도 정당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싶다”라는 것이다.
문신사들은 의료인이 아니라면 시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시대에 뒤처진 법이라고 주장했다. 연간 650만 건의 문신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종사자 수도 10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 경제 규모도 약 2조 원으로 보고 있다. 국회 앞을 찾아 현실에 맞게 제도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국회에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17대 국회에서 문신사 법제화를 위해 문신사 면허 시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중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제18, 19대 국회에서도 ‘문신사 법안’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문신사들은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힌 탓에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시술을 받고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구에서 문신사로 일하는 박평일(34) 씨는 “시술을 받은 이후 피부과에서 지우고 싶다고 비용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라며 “계좌 이체를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동업자 정신이 실종되는 일까지 벌어지는 추세다. 불법이란 점을 이용해 한동안 경쟁 업체를 문닫게 만들고, 그 사이 수익을 높이고 있다. 최수희(27) 씨는 “매출이 많은 가게를 시샘해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다. 경찰이 오고, 문신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려는 속셈”이라며 "법제화가 되면 이런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일부 문신사들은 ‘위장술’까지 쓰고 있다. 문제없는 가게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해 네일샵, 화장품 가게로 사업자등록을 내는 실정이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올라왔다는 김현정(51) 씨는 “남녀노소, 중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시술을 받는 게 현실인데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경찰들도 나오면 별 수 없이 돌아가고 있다”라고 제도를 현실에 맞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속적인 '법제화' 요구에도 국회가 복지부동하는 것은 의사들의 영향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의사들의 상당수가 문신사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어 쉽게 법안을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것. 현직 국회의원의 한 비서관은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 법안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병원 의사는 "문신 시술하는 의사도 거의 없고, 눈썹 문신처럼 반영구 화장을 하러 업체를 방문하는 마당에 법제화 반대에 명분이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문신처럼 비의료인에게 유사의료행위를 하나 넘겨주면 다른 것들도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라고 의료계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이사장은 문신사 법제화가 일석삼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자리 창출, 국가 세수 증대, 손님의 건강증진이다. 문신 행위를 양성화한다면 최소 10만 명의 신규사업자 등록과 함께 최대 2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임 이사장은 "문신 기자재 수출과 관광산업의 활성화로 세수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 테두리 안에서 당당한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싶다"라는 바람도 내비쳤다.
임 이사장은 또 "문신이 손님의 보건과 위생이 문제라면 교육을 하고 자격화 해 관리하면 될 일"이라며 "영국, 독일, 미국보다도 앞서 있는 문신 기술을 키워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