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첫 단추' 리버스 엔지니어링… 뜯어봐야 이긴다

입력 2019-09-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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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19-09-29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17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전자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LG전자 HE연구소장 남호준 전무가 패널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국내시장에 판매중인 QLED TV에 적용된 퀀텀닷 시트를 들고 있다.(사진제공=LG전자)
국내 간판 기업들 사이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역으로 추적해 처음의 문서나 설계기법 등의 자료를 얻어내는 일)’이 생존 키워드로 떠올랐다.

경쟁사의 제품을 뜯어보며 장점은 벤치마킹하고, 특허 등에서 피해를 봤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디드 셴카 오하이오 주립대 피셔칼리지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카피캣(Copycat·모방꾼)’에서 “혁신적 모방만이 복잡하고 빠른 비즈니스 환경을 이겨낼 생존법”이라고 했다

◇표절과 모방 사이=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월 말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LG화학, LG화학 미국 현지법인을 미국 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LG전자 역시 LG화학의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배터리 모듈과 팩을 생산·판매하고 있다는 이유로 변방법원에 함께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경쟁사의 제품을 뜯어 확인한 결과 자사의 특허 2건이 침해된 것을 인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LG화학 역시 이에 대응해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법인(SK Battery America)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LG화학은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을 직접 분석, 특허 침해 혐의점을 찾아냈다.

LG화학 관계자는 “해당 배터리가 당사의 2차 전지 핵심소재인 SRS® 미국특허 3건과 양극재 미국특허 2건 등 총 5건을 심각하게 침해해 부당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해당된 미국특허 5건은 모두 2차전지의 핵심소재 관련 ‘원천특허’에 해당해 사실상 회피설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29일 “기업 간의 정정당당하고 협력적인 경쟁을 통한 선순환 창출이라는 국민적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소송 남발”이라며 “소송을 당한 뒤 반복적이고 명확하게 밝혀 온 바와 같이 모든 법적인 조치를 포함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8K QLED TV를 분해하며 공격에 나섰다. LG전자는 지난 17일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를 열고, 올해 출시된 삼성 QLED 8K TV와 LG 올레드(OLED) 4K TV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이날 남호준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 연구소장 전무는 분해된 QD 필름을 손에 들고 “이 시트가 들어가면 TV를 비싸게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경쟁사는 QD 시트를 이용한 QLED TV로 명명, 여러 오해 요소를 만들어내고 있다. QD 시트를 적용한 LED를 경쟁 치열한 글로벌 8K 시장 주도하고 싶다면 모델만 늘릴 것이 아니라 국제적 규격에 맞는 TV를 내놔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LG전자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삼성전자의 QLED TV를 뜯어보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게재했다. (출처=LG전자 유튜브 캡쳐)
LG전자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공세를 이어갔다. 5분 30초 분량의 영상에서 LG전자 연구원들은 삼성 QLED TV를 뜯으며 백라이트, 반사시트, 도광판, 확산판, QD시트, 광학시트, 액정패널 등으로 구성된 ‘QD-LCD TV’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자사 올레드 TV 역시 분해해 비교하면서 QLED TV와 달리 별도의 시트가 필요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삼성전자는 미국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 ‘QLED 명칭’ 사용에 문제없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29일 밝히는 등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QLED 명칭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주로 광고 심의에 관한 것일 뿐”이라며 “공정 당국의 판단과는 별개의 사례를 끌어들여 논점을 흐리지 말고,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의 첫 단추, ‘逆설계’의 비밀을 찾아라=자동차 역시 ‘리버스 엔지니어링’ 시스템이 곳곳에 녹아 있다. 예컨대 경쟁사의 새 모델 하나를 분해하고, 해당 기술과 개발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차 전체를 하나하나 낱낱이 뜯어보기도 한다. 이른바 티어-다운(Tear Down)이다.

한때 기아자동차의 전신이었던 기아산업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노하우를 지닌 메이커로 손꼽혔다.

1980년대 중반, ‘공업합리화 조치’ 해제로 승용차 시장에 재진입했던 기아산업은 당시 마쓰다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기아산업은 당시 ‘핵심기술’ 이전에 인색한 마쓰다를 제치고, 몰래 소형 미니밴 한 대를 분해해가며 3만 장이 넘는 설계도를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시 기아산업은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역(逆)설계의 달인’으로 불렸다.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일본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특허를 잘 피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이브리드라는 공통분모는 동일하되 이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특허 논란을 피해 나간 셈이다. 철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결과다.

친환경차의 궁극점으로 불리는 수소전기차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수소전기차를 양산하는 곳은 한국의 현대차와 일본 토요타, 혼다 등 3곳이 전부다. 앞서 일본 토요타는 2015년 수소전기차 관련 특허 5680건을 모두 공개해버렸다. 기술력 우위 이미지를 알리면 관련 분야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차의 공세가 거세지자 최근 일본 중견·중소기업들은 속속 한국에서 수소전기차 기술특허를 출원 중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년 44건에 불과했던 일본 기업의 한국내 수소전기 특허건수(출원)가 지난해 121건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우리 정부가 본격적인 수소사회 진입을 천명하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은 벤치마킹, 카피 차원을 넘어 특허를 피하기 위해 혹은 경쟁사와의 공방을 위해 제품 뜯어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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