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올수록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현대차 출입기자들 대부분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가 푸념하듯 내뱉었던 몇 마디 속에는 날카로운 뼈가 담겨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고위 임원 역시 “적어도 이번 정권에서는 재추진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무산 이후 현재까지 묵묵부답입니다. “그룹의 주요 현안인 만큼, 시장과 주주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게 공식입장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재계의 분석도 쏟아져 나옵니다.
예컨대 큰 손 '국민연금'이 현대차 지분을 늘렸거나, 전통적인 우호지분 가운데 하나인 ‘캐피탈 그룹’이 지분을 늘리거나 뺄 때면, 갖가지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는 합니다.
그때마다 갖가지 시나리오도 등장합니다. 심지어 “언제쯤 지배구조 개편안이 재추진된다”라는 제법 그럴싸한 전망도 금융투자업계에서 나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때마다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갔고, 당사자인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신중한 입장을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그룹 지배구조의 개편은 다음 한 시대가 출발하는 시작점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시장 분석과 주가 향방, 주주의 의견 등을 고려해야 할 사안이지요.
그런 면에서 지난해 3월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지배구조 개편안은 최적의 전략이었습니다. 내용은 둘째로 쳐도, 추진 시점이 기막혔다는 것인데요.
재계에서는 ‘무엇을 하든 정권 초기에 해야 뒤탈이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합니다. 현대차그룹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적절한 시점을 찾았고, 그 시점이 작년 3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편안 추진이 무산되고, 나아가 1년 넘게 재추진이 미뤄지면서 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정권 내에서 개편안 재추진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전망이 속속 나옵니다, 실제로 복수의 고위 관계자들이 같은 맥락의 의견과 내부소식을 전하고 있으니까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서둘러서 좋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개편안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보일 만큼 최적의 패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주주들의 반대로 개편안이 무산됐지요. 그룹 입장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현 정부 5년 임기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정도 달라졌습니다.
역대 정권의 임기와 재계 주요기업의 중대 현안을 맞물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대부분 정권 초기에 중대 경영전략을 결정하고, 그 결과는 늦어도 정권 중기에 마무리됐습니다.
노무현 정부(2003~2008년) 시절 대우건설 매각(2006년), MB 정부(2008~2013년) 때 현대건설 매각(2011년) 등이 정권 초기에 시작해 중반에는 마무리가 된 사례입니다. 지배구조 재추진을 서둘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뿐인가요. 이런저런 이유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던 재계 총수에 대한 특별사면도 대부분 정권 초기에 이뤄졌습니다.
혹여 정권 말기에 주요 현안을 추진하다 정권이 바뀌면 자칫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화장실에 가더라도 정권 말기는 피하자”는 재계의 통념을 따를지, 아니면 ‘정의선 시대’를 열기 위해 현 정권의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과감한 결단을 내릴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