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인문학 저술가
낯선 시골 동네의 물가에 집 짓고 들어앉아 새 삶을 도모하던 시절이다. 초조함에 감싸인 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끌어당겨 한자리에 앉히고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노자’와 ‘장자’를, ‘주역’과 ‘공자’를 두서없이 읽고, 마음의 어지러움을 다독이며 명상의 삼매경에 드는 한편, 초목과 바람을 벗 삼는 시골살이의 고적함과 불편을 품어 안았다. 마당 한편에 모란과 작약과 영산홍을 심어 가꾸고, 봄이면 나무시장에 나가 앵두나무와 대추나무와 복숭아나무를 구해다 심었다. 작은 연못을 파 여름 아침 수련의 꽃을 보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한 마음을 달랬다. 곤줄박이와 물가마귀와 동박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집과 가까운 숲에 날아와 우짖는 날들이 흘러갔다. 고요한 날들이었다. 울퉁불퉁하던 삶이 다시 평탄해졌다. 다시 도약하리라! 신용불량자가 회생 대책을 세우듯이 지나온 거친 세월 속 삶을, 그 삶의 안쪽에 점점이 박힌 실패와 오류를 되새김질했다. 어쨌든 덧없이 오고 가는 계절을 견디며 살았다. 새벽에 깨어나면, 어김없이 커다란 저수지에서 올라온 물안개가 마당을 집어삼킨 광경과 마주했다. 물안개는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혼돈과 불가능성을 품고 높고 단단하게 세워진 그 벽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스무 해 전 시골에 처박혀 ‘장자’를 읽을 때 내 어리석음이 망치로 얻어맞고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공자가 제자 안회에게 ‘심재(心齋)’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놀라며 배운 바가 컸다. ‘심재’는 ‘앉아서 잊어버림’이란 뜻의 ‘좌망(坐忘)’과 더불어 ‘장자’에서 처음 본 낯선 어휘다. 안회가 폭정을 일삼는 위나라 임금에게 찾아가서 바로잡겠다고 하자 공자가 안회를 말리면서 “먼저 심재하라”고 권유한다. 안회는 심재에 드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道)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心齋)니라.” 이때 ‘심재’란 마음을 굶기는 것. 즉 마음을 굶겨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안회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공자의 말을 금세 알아듣고 “제가 지금까지 심재를 하지 못한 것은 제 자신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안회는 제 마음을 돌아보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욕심, 집착, 독선을 보았으리라. 마음이 욕심, 집착,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릇된 예단에 빠지기 일쑤다.
안회는 다시 공자에게 묻는다. “제가 심재를 실천하기 전에는 안회라는 제 자신이 실재처럼 존재하지만, 심재를 실천하여 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을 ‘비움(虛)이라 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공자는 “바로 그렇다”라는 말에 덧붙여 “걷지 않고 자취를 안 남기기는 쉽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려운 일. 사람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쉬우나, 하늘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어려운 일. 날개로 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날개 없이 난다는 말은 못 들었을 것이다. 앎이 있어 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앎이 없이 안다는 말은 못 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걸어간 길엔 그의 자취가 남기 마련이다. 아아, 내가 지나온 자리마다 남은 실수와 실책의 흔적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작은 앎에 도취해 그 알량한 앎에 기대어 나는 얼마나 교만을 떨었던가! 마음을 비운 사람은 마치 자신이 없는 듯 움직인다. 다만 고요하다. ‘장자’를 읽은 뒤 내 마음이 욕망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았고, 내 마음이 품은 온갖 번뇌와 고통이 그것에서 말미암음을 깨달았다. “마음을 굶겨라!” 나는 장자가 권유하는 ‘마음 비움’의 지혜를 말하는 대목을 가슴에 여러 번 되새기며 읽었다.
그 유적지 같은 날들을 아무 기쁨도 없이 묵묵하게 견디며 감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를 심고 그것들이 맺는 열매를 바라보는 동안 내면 형질이 서서히 바뀌어갔다. 나는 북쪽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 ‘곤’인 듯 살았다. 비록 날개를 얻어 ‘붕’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럭저럭 평화로왔다. 내게서 멀어진 이들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발음해보던 고독한 나날들. 그때 나를 위로한 건 물가에 선 버드나무들, 먼 나라의 호젓한 만(灣)과 해변에 대한 동경, 오후의 산책들, 반려견, 그리고 몇 권의 책이었다. 벗들은 멀리 있고, 고독만이 영혼을 견고하게 단련시켰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빨래를 해서 널고 그것이 말라가는 동안 내 안의 불안이 잦아드는 걸 느꼈다.
버드나무 그림자가 비친 저수지의 물을 바람이 밀며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시 몇 줄을 썼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던 날들.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을 거야./아마 그럴 거야./아마 그럴 거야./감자의 실뿌리마다/젖꼭지만한 알들이 옹알이를 할 뿐/흙에는 물 마른자리뿐이니까./생후 두 달 새끼 고래는 어미 고래와 함께/찬 바다를 가르고 나가고 있으니까,/아마 그럴 거야./물 뜨러 간 어머니 돌아오시지 않고/나귀 타고 나간 아버지 돌아오시지 않고/집은 텅 비어 있으니까,/아마 그럴 거야.//지금은 탁란의 계절,/알들은 뒤섞여 있고/어느 알에 뻐꾸기가 있는 줄 몰라./구름이 동지나해 상공을 지나고/양쯔강 물들이 황해로 흘러든다./저 복사꽃은 내일이나 모레 필 꽃보다/꽃 자태가 곱지 않다./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좋은 것들은/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니까/좋은 것들이겠지./아마 그럴 거야./아마 그럴 거야.”(「몽해항로 6 ― 탁란」) 새벽엔 경전을 읽듯이 책을 읽고, 낮엔 반려견을 데리고 집 뒤의 약수터를 찾던 그 시절엔 그랬다. 한밤중 저 멀리 전조등을 켜고 어둠에 묻힌 지방 국도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기어코 잘 살아보리라 했다.
어느 날 한 출판사의 기획자가 시골집을 찾아왔다. 그 기획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나는 ‘마흔의 서재’란 책을 썼다. ‘마흔의 서재’는 물안개 자욱한 새벽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로 나가 마음공부를 하던 그 시절의 조촐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때 읽은 책과 나를 품었던 서재는 나의 피난처이자 은신처였다. 갈매나무 한 그루 품지 못한 채 마흔에 불시착한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꿈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망과 의혹을 뚫고 앞으로 나가기. 깨어 있을 땐 숨결을 가지런하게 하고 밤에는 작은 꿈들을 꾸며 고요하게 살기. ‘마흔의 서재’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세월은 얼마나 빠른가. 나는 그 마흔의 시절에서 멀리 벗어났다. 내가 마음에 품었던 미망 한 꺼풀을 벗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것은 마흔의 나이에 만난 ‘노자’와 ‘장자’을 벗 삼아 읽은 덕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