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글로벌 기술수출 규모가 해마다 증가해 올해 8조 원을 돌파했다. 임상 3상 실패 등 부침 속에서도 꾸준한 연구·개발(R&D)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는 평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는 약 8조38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5조3700억 원보다 3조 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2017년 1조4000억 원이던 기술수출 규모는 지난해 5조 원대로 급증하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진일보한 R&D 능력을 확인시켰다. 올해는 유한양행으로 시작해 최근 알테오젠까지 기술수출 사례가 신약후보물질은 물론 원천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눈길을 끈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IV) 의약품을 피하주사(SC)로 바꾸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ALT-B4) 원천기술을 글로벌 10대 제약사 중 한 곳에 수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계약금은 1300만 달러(약 153억 원)이며,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여러 품목에 대해 임상과 허가, 일정 판매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13조7300만 달러(약 1조6190억 원)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제약·바이오 기술수출 계약 중 가장 큰 규모다.
ALT-B4는 세계 두 번째로 개발된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원천기술이다. 알테오젠은 이 기술을 최초 개발한 미국 기업 할로자임의 특허를 회피하며 자체 기술력으로 국내에 특허를 출원했다.
할로자임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곳의 글로벌 제약사와 총 7조 원에 달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알테오젠의 ALT-B4도 높은 가치를 가질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원천기술에 대한 수출 계약이란 점에서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과 추가적인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SC 제형 의약품 개발은 글로벌 제약업계의 흐름”이라며 “이번 기술수출로 알테오젠의 기술력이 검증되면서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알테오젠 외에도 올해는 바이오벤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특발성 폐섬유증(IPF)을 포함하는 섬유화 간질성 폐질환 치료를 위한 오토택신 저해제 계열의 신약 후보물질 ‘BBT-877’을 기술이전했다. 계약금과 단계별 기술료만 4500만 유로(약 600억 원), 임상 개발과 허가 및 판매 기술료가 최대 11억 유로(약 1조4600억 원)에 달한다.
설립 4년 만의 초대형 성과는 코스닥 시장 입성의 발판이 됐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해 두 차례 기술성 평가를 통한 상장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번에는 성장성 특례로 연내 상장할 예정이다.
결핵백신 전문기업 큐라티스는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바이오파마와 1조2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성인·청소년 결핵백신(QTP101)의 라이선스와 독점 판권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큐라티스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임상시험을 담당하고, 임상시험 단계별로 바이오파마가 마일스톤을 지불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중국 제약사 심시어테라퓨틱스와 이중융합 면역항암제 ‘GI-101’의 중국 지역 독점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이전하는 최대 7억9600만 달러(약 9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중국 기업에 기술수출한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이 회사는 유한양행 출신 남수연 대표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비소세포폐암 신약 ‘레이저티닙’으로 1조4000억 원 잭팟을 터뜨린 유한양행은 올해도 2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하며 업계 1위 기업의 저력을 보여줬다. 유한양행은 1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와 7억8500만 달러(약 8800억 원) 규모의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 신약후보물질 라이선스 및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후보물질은 유한양행이 독자적으로 기획해 R&D 중인 과제란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7월에는 NASH 및 관련 간질환을 치료하는 혁신신약 ‘YH25724’를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총 8억7000만 달러(약 1조 50억 원)에 기술수출했다. 유한양행은 2010년부터 이어진 베링거인겔하임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임상 1상에 진입하기 전인 동물실험(전임상) 단계에서 YH25724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NASH는 간에 지방 축적과 염증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진행성 질환으로, 간 손상 또는 섬유화를 유발해 간 기능을 손상한다. 심한 경우 말기 간질환이나 간암 등으로 발전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뾰족한 치료제가 없어 치료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라 미충족 수요가 크다. 글로벌 NASH 치료제 시장은 2026년 약 28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 계열사도 기술수출에 가세했다. SK바이오팜은 독자 개발한 뇌전증 혁신신약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내 상업화를 위해 2월 스위스 아벨테라퓨틱스와 5억3000만 달러(약 6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반환 조건 없는 계약금은 1억 달러로, 판매가 시작되면 매출 규모에 따른 로열티도 받는다.
세노바메이트가 유럽의약품청(EMA) 시판 허가를 받으면 영국·독일·프랑스 등 32개국에 판매된다. 전 세계 주요 국가의 뇌전증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61억 달러(약 7조2000억 원)로 집계됐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엑스코프리’란 제품명으로 시판 허가를 획득, 내년 2분기 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