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노사관계와 임금안정이 車산업 급선무”

입력 2019-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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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로 날아가 무역확장법 불합리함 강조…유럽 '노동 유연성' 받아들여야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올 한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은 다양한 대외 악재에 휘둘렸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으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인도와 남미 등 주요 신흥시장마저 위축기에 빠졌다.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자동차 산업도 암담했다.

밖에서는 주요시장의 관세 위협에 운신의 폭이 줄었고, 안에서는 지루하게 이어져 온 노사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완성차 기업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자동차산업계와 정부 간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나라 안팎에서 관세부과에 맞서기 위해 직접 현지에 날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중심에는 밤낮없이 동분서주한 정만기 협회장이 있었다.

그동안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완성차 기업의 대표이사급이 2년마다 교대로 이름을 올렸다. 명목상 회장이었을 뿐 ‘대(對)정부 가교 역할’이라는 협회설립 취지를 온전히 살리지는 못했다.

2010년대 들어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높은 이해도를 지닌 경제관료 출신이 협회를 끌어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올 초 17대 회장으로 취임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출신 정만기 회장은 더욱 보폭을 넓혔다.

산업계, 특히 자동차 산업과 정책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던 그는 위기에 빠진 완성차 기업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직접 미국 현지로 날아가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 자동차 산업계를 두루 돌며 “추가적인 관세 부과의 불합리하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제정한 '2019 자동차인 산업부분'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취임 첫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정만기 회장과 이투데이가 마주 앉았다.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부과의 불합리성을 알리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갔다?

“양국 사이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존재하는 만큼, 추가적인 관세 부과의 필요성이 낮다는 걸 강조했다. 우리 자동차 기업이 미국에서 미국 자동차 기업과 직접 경쟁하지는 않는다. 현대차는 앨라배마에, 기아차는 조지아에는 각각 공장도 지었고, 2만 명 이상 직ㆍ간접 고용도 한다. 미국 공장에서 만든 차 중에서 17%는 수출도 한다.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될 가능성이 작다는 게 현재 미국 측 반응과 우리의 분석이다.”

=‘무역확장법’이 내년 미국 대선 때까지 협상 카드로 활용된다면 불확실성이 커질 텐데?

“선거용으로 한국 자동차 기업을 압박하기보다 차라리 중국과 무역분쟁 카드 또는 북핵 협상이 더 효과적이라는 현지 보도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한국 자동차를 압박해서 얻는 이득보다 잃을 게 더 많다는 견해도 미국이 먼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세가 올라가면 자동차 판매가격도 인상될 텐데 여기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 측과 선거와 연관해서 의견을 나누지 않았지만, 사실상 ‘무역확장법’이 선거에 활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내년, 또는 4년 뒤 미국 행정부가 바뀐다면 또다시 다른 정책에 대응해야 하나?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보호무역주의가 너무 강하다. 당장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다. 관세 부과는 협상이나 또 다른 정책으로 대응하면 되는데, 강대국 사이의 싸움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와해를 우려하는 시각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내년 또는 4년 뒤에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숨통이 트일 것이다.”

=최근 유럽 자동차산업계와도 소통하기 시작했는데?

“독일 자동차제조사협회(VDA)도 만나봤는데 글로벌 무역분쟁 탓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그래도 독일은 우리보다 노동 유연성이 높아서 숨을 돌리고 있다. 독일의 1주당 근로시간이 우리보다 짧다. 1주당 39시간만 일한다.

BMW 공장에도 직접 가봤는데 주문이 늘어나면 언제든지 작업시간을 확대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비정규직 근로자도 4년 동안이나 채용할 수 있다. 우리는 2년을 넘어서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게 기업으로서 큰 장점이었다. 독일차 경쟁력의 원천인 셈이다.“

▲정만기 회장은 최근 완성차 업계의 노조 역시 합리적인 의식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작은 변화에서 시작해 노사문화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정 회장의 모습.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일단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가 높다. 우리도 높여야 하는데 영업이익을 못 내니 그게 쉽지 않다. 영업이익을 못 내는 배경에는 노사문화 경직성이 자리잡고 있다. 당장 현대차만 해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 비율이 2.9%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영업이익이 3%대까지 떨어졌다. 영업이익으로 돈을 벌어서 간신히 연구개발비 정도를 충당한다는 뜻이다.

노사 문화가 경직돼 있다 보니까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세우기가 부담스럽다. 우리나라는 매년 임금 협상하고 2년마다 단체협상한다. BMW는 2~3년에 한 번씩 노사협상하고 미국은 4년마다 한다. 우리는 좋은 에너지를 매년 노사협상에 쓰는 셈이다.”

=최근 현대차에 합리적 노선을 지향하는 노조도 등장했는데?

“요즘 현대차 노조가 무분규로 협상 타결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많아졌다. 기아차와 르노삼성에서 부침이 있는데 잘 해결되리라 본다. 심지어 최근에는 노동계 내부에서도 3년에 한 번씩 임단협을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동차산업협회가 매달 포럼을 열고 있는데, 내년 초에는 노동계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한다. 노사문화가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의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하루아침에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광주시가 10여 년 전부터 세웠던 완성차 100만 대 시대 정책이다. 자동차 업계의 공통된 고민이 생산 원가 상승이다. 청년들 뽑아서 공장을 운영한다면 생산 비용이 유리해지고 고용 효과도 커진다."

=언젠가는 이들의 임금도 올라갈 텐데 지속가능성은?

“선택의 문제인 만큼, 예측하기 어렵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그리고 근로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인건비가 상승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차종을 생산하던가, 고용 유연성을 확대할 수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이 노사관계 개선에 좋은 선례가 되길 희망한다.”

=현재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를 콕 짚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노사문제와 친환경차, 미래차 등 모든 현안이 연결된 시스템 산업이다.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단언 못 한다. 다만 ‘노사 관계 개선과 생산성 범위 내에서 임금 안정’이 해결돼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투자를 확대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올해 자동차 산업이 이렇게 힘든데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너무 표심에 휘둘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이해해줬으면 한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지 말고 반대급부의 입장도 들어줘야 한다. 임기응변식 입법보다 경쟁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급선무다.

여기에 갖가지 규제도 걸림돌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좋다고 하는 규제는 모조리 들여와 개정안을 만든 게 한국의 자동차 관련 법규다.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 대 정도 자동차가 팔리는데 경쟁기업이 10~15곳이다. 경쟁이 얼마나 극심한지 꼭 이해해 줬으면 한다."

▲정 회장은 입법부의 임기응변식 입법보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경쟁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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