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교열팀장
프랑스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년)가 계약결혼한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 속 문장이다. 서른두 살에 처음 배운 자전거의 매력에 홀딱 빠진 그녀는 소설 ‘타인의 피’에서도 자전거를 묘사한다. “저 아름다운 노란색 안장에 앉아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거야.”
세계 최초의 자전거는 ‘바퀴 달린 목마’ 모양의 셀레리페리다. 1791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자전거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기는커녕 발로 땅을 밀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수준이었다. 튼튼한 심장과 두 다리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오늘날의 자전거 모습을 갖춘 건 1880년대 후반이다. 사람들은 바람을 가르는 ‘속도’에 열광했다. 집 안에서만 지내던 여성들도 거리로 나와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배와 허리를 졸라맨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짧은 바지 차림으로 ‘빠름 빠름’을 즐기는 여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자전거 = 여성 해방’이란 상징적 의미가 형성된 순간이다.
1982년 우리집에도 작은 혁명이 일었다. ‘전교 1등 모범생’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작은오빠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학생은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만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었다. 그 시절 배달 서비스의 대명사는 신문과 우유. 오빠는 새벽 네 시, 알람시계가 울어대면 로봇처럼 일어나 신문 지국으로 달려갔다.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둘 거라는 엄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봄이 가고 한여름, 찌는 더위에 파김치가 되어도 오빠의 신문 배달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우리집 마당에 둔탁한 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고집불통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정보’를 팔면서 ‘꿈’을 키웠던 걸까? 오빠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신문을 돌리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합격자 발표 날, 우리집 마당엔 몸체가 날렵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 자전거가 서 있었다.
자전거엔 각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최근에 마음을 끈 건 ‘자전거 여행’의 작가 김훈의 말이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봄날같이 따뜻했던 설 다음 날 한강 공원에 나가니 김훈처럼 아날로그 속도감에 매료된 이들이 참 많았다. 색색깔의 자전거를 타고 제각각의 속도로 페달을 돌리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멍하니 서 있는 내 앞으로 ‘따르릉’ 소리를 내며 초록 물결이 휙 지나갔다.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탄 청소년들이다. 보부아르가 말한 ‘아름다운 노란색 안장’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천국의 아이들처럼 행복해 보였다.
자전거 벨소리 “따르릉~”에서 이름을 따온 따릉이가 많은 이들의 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공원뿐만 아니라 사무실, 도서관, 학교, 마트 등 어디에서든 초록 바퀴를 볼 수 있다. “서울에 따릉이가 댕긴다고유? 대전에는 ‘타슈’가 있슈. ‘타슈’ 타 봤슈?” “따릉이가 뭔 대수랑가? 쪼매만 지달리면 광주에도 ‘타랑께’가 돌아댕긴당게.”
바야흐로 ‘공공자전거 전성시대’이다.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축복뿐만 아니라 정감 넘치는 사투리를 듣는 즐거움도 크다. 충청도 사투리 ‘타슈’는 ‘타슈우~’ 하고 뒤를 길게 발음해야 말맛이 제대로 난다. ‘타브러’· ‘타븐디’ 등과의 경쟁에서 이긴 ‘타랑께’는 ‘타라니까’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로 왠지 자전거의 경쾌한 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경남 통합창원의 ‘누비자(누비다+자전거)’, 전남 여수의 ‘여수랑’, 순천의 ‘온누리’, 세종의 ‘어울링’, 수원의 ‘반디클’, 경북 영천의 ‘별타고’ 등도 지역 특색을 담은 공공자전거 이름이다. 예쁜 이름만큼 큰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차차, 자전거 추억을 더듬다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풍덩 빠져버렸다.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