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1기 신도시인 산본에 아파트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 '수직증축'(기존 아파트 위로 2∼3개 층을 더 올려 짓는 것)에 발목이 잡힌 분당신도시를 대신해 산본신도시 주요 단지들이 최근 리모델링 사업을 적극 나서면서 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율곡ㆍ개나리 아파트 등도 잇따라 사업 준비
정비업계에 따르면 산본신도시 우륵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지난 19일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위한 총회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총회 개최를 위한 참석 인원을 충족했다. 이로써 우륵아파트는 산본신도시의 첫 리모델링조합 설립 단지가 됐다.
우륵아파트 주민들은 '수평·별동 증축' 리모델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수직증축이 유리하나 사업 속도 등을 감안하면 수평·별동 증축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별동 증축은 단지 내 남은 땅에 새로 짓는 것을 말한다.
조합 측은 수평·별동 증축을 통해 기존 지하 1층, 지상 15~25층짜리 아파트 1312가구를 지하 3층, 지상 15~25층짜리 1508가구로 증축할 예정이다. 이 중 196가구는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산본신도시에선 율곡주공아파트가 리모델링사업 조합 설립을 위한 소유주 동의서를 받고 있다. 조합설립 동의율 70%로 조합설립을 위한 법정동의율을 이미 달성했다.
율곡주공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위는 다음달 24일에 창립총회 개최 예정이다.
이 아파트 리모델링설립 "보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해서는 리모델링이 시급하다"면서 "아직 초기 단계이나 주민들의 열의가 워낙 높아 빠른 사업 진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나리주공아파트도 리모델링 사전 동의율 50%를 넘겼다.
일부 단지 수평증축으로 활로 찾아… 느티마을은 수직증축 허가 기대도
리모델링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산본과 달리 1기 신도시 중 가장 먼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던 분당은 최근 열기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했던 연내 착공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원인은 수직증축 방식의 리모델링 때문으로 보인다. 분당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수직증축 방식의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는데, 수직증축의 경우 안전성 검증 과정이 재건축에 버금갈 정도로 까다롭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에 나서기 위해서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또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의 1·2차 안전 진단은 물론 1·2차 안전성 검토까지 총 4개의 검증 관문을 모두 거쳐야 한다. 이로 인해 분당신도시 리모델링 사업은 수 년째 답보 상태다.
사업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지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일부 단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일부 포기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기로 결정했다. 분당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가 기존 3개층 수직증축에서 1개층 수직증축과 별동 증축으로 설계를 변경한 것이다.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도 수평·별동 증축으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수직증축 허가를 기다리는 단지도 적지 않다. 정자동 느티마을 3,4단지는 2차 안전성 검토 결과를 앞두고 있으며, 이달 중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수직증축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느티마을 3,4단지가 2차 안전성 검토에 통과할 경우 수직증축 방식의 리모델링 사업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여 기대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건물 구조 안전성에 중점을 둬야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성이 부족한 기준 탓에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잇따라 방향을 바꾸고 있다"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안정성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