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조건 개선 없이 ‘돈 줄테니 中企 취직하라’ 식… 인국공 사태로 공정성 화두
제도적 지원만 보자면 현재 청년세대는 역대 어떤 청년세대보다 풍요롭다. △중소기업에서 3년간 일하면서 총 600만 원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각각 600만 원, 1800만 원을 지원해 3000만 원으로 되돌려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진단·경로 설정, 의욕·능력 증진, 집중 취업 알선 등 단계별로 최대 150만 원의 수당이 지급되는 취업성공패키지 등 유형도 다양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도 청년수당, 청년월세지원, 청년면접수당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에만 연말까지 공공임대주택 14만1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도 청년들의 눈높이에는 모자라다.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이 반영되지 않아서다. 정부의 청년정책은 대체로 ‘현금을 지원해 줄 테니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라’고 등 떠미는 식이다. 근본적으로 중소기업의 근로조건·근무환경을 개선하거나, 경력직 채용 활성화로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방향과 거리가 멀다. 공공임대주택도 결국은 ‘월세’다. 자산으로서 ‘내 집 마련’ 욕구를 충족시킬 리 만무하다.
세무직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이선진(22·여) 씨는 “정부의 청년정책은 청년 취업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양만큼 청년들이 원하는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하는데, 많은 청년이 공무원이나 공기업·대기업으로 몰리는 건 중소기업에 질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준상(32·남) 씨는 기회가 와도 임대주택에 입주할 마음이 없다. 그는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도 부담이고, 무엇보다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며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그 동네 사람들이 ‘가난한 동네’ 이미지를 만든다며 반대하는데, 누가 거기에 살고 싶겠냐”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정성 훼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계기로 불거졌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대표적이다. 필기시험 없는 공무직 공무원화, 특성화고 출신만 지원 가능한 공무원 지역인재전형 등 유사 사례도 많다. 성적순 줄 세우기가 곧 공정인 사회에서 정부는 취약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수도 없이 공정성을 깼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느낀 건 박탈감이다. 주된 배려 대상은 고졸과 지방대 출신,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등이다. 학창시절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진학하고, 스펙 쌓기 등 취업준비에 매진한 이들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없다.
이선진 씨는 “평가에 있어서 공평하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문제가 된 인천공항 사태도 그렇고, 공무원 고졸 채용 인원 증가도 그렇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역차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였던 김수민(24·여) 씨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보면서 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해 달라고 떼쓰면 다 되냐. 그럼 내가 뭐하러 자격증 따고, 전공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공부하고 있냐”며 “집이 인천인데, 그냥 인천공항에서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정규직 시켜 달라고 시위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취업지원제도 형평성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상당수 기업에선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신규 직원에게만 적용돼 기존 직원과 신규 직원 간 실질임금 역전이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대표 취업지원제도인 취업성공패키지는 35세를 기준으로 지원 조건·내용이 달라진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이주형(28·남) 씨는 가장 ‘나쁜 제도’로 공공인턴제를 꼽았다. 그는 “취업을 돕는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인턴을 뽑아 정량적인 스펙만 쌓게 하는 건 취업난 해소에 크게 도움이 안 될뿐더러,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외감만 준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좋은 정책도 있지만, 대부분 정책이 정말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인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세종=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