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군부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 커져…헌법 개정 필요
왕실 모독죄에 대한 우려 존재…군주제 개혁 요구
태국 동북부 우돈타니 주에 거주하고 있는 대학생 A(22·여) 씨는 두려움 속에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를 이같이 표현했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 및 군주제 개혁을 외치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7월에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어느덧 네 달째 이어지고 있으며, 19일 왕궁 옆 사남 루앙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3만 명가량이 참석해 2014년 쿠데타 이후 반정부 집회로는 최대 규모의 인원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태국 정부는 15일 국영방송을 통해 '긴급칙령'을 발표하고 5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비상조치를 가동했다. 칙령에는 5인 이상 집회 금지를 비롯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도와 온라인 메시지 금지, 정부청사 등 당국이 지정한 장소 접근 금지 등의 명령이 포함됐다.
하지만 시위대는 정부의 집회금지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태국 정부가 시위 핵심 인물들을 검거하고 물대포까지 동원하며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현지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태국 국민은 실제로 정부가 통제하는 매체에 보도된 것보다 많은 10만 명가량의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생 집회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나이·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이에 경찰 당국은 폭력도, 무기도 없는 시위대를 향해 푸른 염료, 최루 가스 등의 화학 약품이 섞인 고압의 물을 살포했으며, 현재 많은 시위자들이 체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국민이 정부의 탄압에도 시위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투데이는 현지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태국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콕에 거주하고 있는 대학생 B(23) 씨는 '군부 정권'에 대한 불만을 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꼽았다. B 씨는 "지금 정부는 군부 독재정권이고 심지어 무능해서 태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면, 폐쇄적이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군부 독재정권과 달리 공정한 투표를 통해 유능한 사람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대가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장군 출신으로,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헌법을 개정해 군부 독재의 시대를 열었다. 군부는 양원제인 기존의 국회에서 상원 의원을 군부에서 임명하는 식으로 개헌했다. 총리 선출 또한 하원 독자 선출에서 양원 협력 선출로 변경해버렸다. 사실상 군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총리로 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학생 A 씨는 "태국은 너무 오랫동안 군부 정권 아래 있었고, 그 6년 동안 현 정권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우리는 더는 국민을 위협하는 정부 아래에서 살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는 "가장 큰 문제는 독재를 공고히 하는 현재의 헌법"이라며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권력 유지 및 계승 수단으로 쓰인 헌법이기에 정부가 지금의 의회를 해산하기를 원한다. 공정한 선거로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들어서야 하며, 민주주의 국가답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도록 보장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국 국민은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퇴진 이외에도 왕실을 비롯한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태국은 '국왕'이 있는 입헌 군주제 국가다. 2016년 왕위를 계승한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은 수차례 반복된 결혼과 이혼 등 복잡한 사생활과 잦은 해외 체류 등으로 인해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하지만 태국 왕실은 '왕실 모독죄(불경죄)'를 적용하며 군주제에 대한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있는 상태다.
태국 국민에게 왕실 비판은 그동안 금기시돼왔다. 왕실을 섣불리 비판했다간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명 '왕실 모독죄'라 불리는 태국 형법 112조는 왕과 왕비, 왕세자와 섭정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 참여한 태국 국민의 경우, '왕실 모독죄'를 우려해 메신저 대화 내용을 전부 삭제하기도 했다.
대학생 B 씨는 인터뷰가 익명으로 처리되는 게 맞는지 확인한 후 "왕실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태국은 원래 입헌 군주제이지만 왕이 법 위에 있는 것 같고 권력도 너무 막강하다"며 "왕실 모독죄 등은 태국이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콕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C(24·여) 씨는 "왕실은 가장 중요하고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라면서 "왕실이 시민들의 낸 세금을 쓰는데 어떤 식으로 돈을 쓰는지 하나도 확인하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알맞게 세금 낭비 없이 사용하라는 의견도 내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C 씨는 "왕실과 군부와의 유착관계 또한 문제"라며 "국민들의 혈세를 받으면서도 국민을 위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왕실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태국 국민은 정부의 탄압에도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1987년 한국의 민주 항쟁과 같이 2020년 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다시 시작됐다"며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태국 외의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태국 정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A 씨는 "우리는 이 문제가 태국에서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원한다"며 "군부 정권이 해산되고 권위주의 정부의 불미스러운 행위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전 세계의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C 씨는 "민주화를 촉구하는 이번 시위는 평화로운 시위이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유사하다"며 "타국의 관심을 받아 세계가 주목한다는 것을 국왕과 군부가 알아야 한다"고 지지를 촉구했다.
통·번역 :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4학년 전미경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