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P&G는 지난해 한국에 다우니 세제를 처음 선보였다. 다우니 세제는 전세계에서 한국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제품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 깐깐한 소비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만큼, 글로벌 기업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 한국 시장을 첫 테스트마켓으로 선택하는 관례가 있을 정도다.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 아시아에서의 흥행이 보장된다고 확신한다.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포기하고 글로컬라이제이션을 고민하는 이유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비재 기업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으로 무장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배달 서비스 역시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가 조사한 카페 소비 규모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은 3위 소비국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성인 1인당 연간 카페 소비액은 92.3달러에 달한다. 스타벅스는 앞서 2018년 중국에서 먼저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다. 중국의 후발 커피전문점들이 배달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스타벅스 매출이 줄자 내린 조치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는 등 영업 제한이 잇따르는 데다 소비자들의 배달 요구가 이어지자 배달 전문점 운영을 결정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7일 오픈한 역삼이마트점과 12월 중순 문을 여는 스탈릿대치점을 배달 전용 매장으로 시범운영한 후 향후 배달 서비스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에는 열광하지만 생활용품과 식품 등을 구입할 때는 품질과 가성비 등을 꼼꼼히 따진다. 네슬레가 롯데푸드와 손잡고 한국에 재진출한 것도 한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과거를 만회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세계 1위 식품기업으로 매출만 100조에 달하는 네슬레는 커피믹스 분야에서 만년 2위를 기록하며 동서식품에 밀렸다. 그러나 2010년 남양유업이 커피믹스 시장에 가세하자 2위 자리조차 지킬 수 없었고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는 한 때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네슬레는 절치부심한 끝에 2014년 롯데푸드와 합작법인인 롯데네슬레코리아를 설립하고 한국 커피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아마존도 네슬레와 닮은 꼴이다. 아마존은 11번가를 운영하는 SK텔레콤(SKT)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 양사는 지분 참여 약정 방식으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아마존은 11번가의 기업공개(IPO) 등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성과에 따라 신주인수권을 받을 수 있다. 양사의 협력으로 내년부터 11번가에서 아마존 상품 구매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사명마저 바꾸지 못한 기막한 사연도 있다. 생활용품 토종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다. 라이온코리아(구 CJ라이온)가 CJ와 지분 관계가 상당부분 정리했음에도 한동안 CJ라이온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다 2018년에서야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글로벌 1위 브랜드지만 한국에서 힘을 못쓰는 브랜드는 이 뿐만 아니다. 세계 콘돔 1위 듀렉스는 한국에서 유니더스에 밀린 후발주자에 머물고 있으며 밀폐용기를 처음 선보인 타파웨어도 한국에서는 락앤락, 글라스락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산업대학원 전태유 유통산업주임교수는 “한국 소비자는 IT강국답게 SNS로 활발하게 제품 사용 후기를 공유하고 제품의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제시하거나 신제품 출시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프로슈머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지만 한국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읽지 못해 고전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최근에는 국내 소비자의 소비 성향과 패턴을 연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