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막고자 수도권에서 23일 0시를 기해 5인 이상 집합이 금지되는 특별방역 조치가 시행됐다. 정부는 24일부터는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를 전국 식당으로 확대하고 사적 모임의 경우 취소나 자제를 강력히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방역대책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한 모습이다. 5인 모임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할뿐더러 방역과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연말연시 특별방역 강화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중대본은 전국적으로 내년 1월 3일 자정까지 식당에서 5인 이상의 모임을 전면 금지했으며, 5인 이상으로 예약하거나 5인 이상이 동반 입장하는 것도 모두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운영자에는 300만 원 이하, 이용자에게는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정부가 내놓은 이번 방역 대책은 성탄절, 송년회 등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연말연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의 격상 없이 방역 강도를 높이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2일 중대본 회의에서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여부와 관련해 "형식적 단계조정보다 생활 속 감염 확산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것"이라며 "3단계보다 강화한 방역 조치를 통해 3차 유행의 기세를 확실히 꺾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주저하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예상되는 3단계로의 상향은 현재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며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3단계에서는 의료기관 등 필수시설 이외에 영화관·미용실·PC방 등 모든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이 중단되며, 전국적으로 약 202만 개의 다중이용시설 운영이 제한된다고 정부는 설명한 바 있다.
정부는 신규 확진자 수로만 보면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기준(전국 800∼1000명 이상 또는 더블링 등 급격한 환자 증가 시)에 부합하지만, 아직은 의료 대응 여력이 있다는 판단하에 환자 발생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뒤 이번 주말 현행 단계(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의 연장 또는 추가 격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특별방역 대책과 관련해 여러 허점이 존재한다는 시민들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가 23일 내놓은 '특별방역 대책' 문답집에 따르면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직계가족끼리 혹은 주민등록표상 똑같은 거주지에 사는 사람끼리의 사적 모임은 예외가 인정된다. 만약 식당에서 5인 이상이 식사한다고 가정할 때, 이들이 직계가족이거나 똑같은 거주지에 살기만 한다면 모임이 가능한 것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5명 이상 금지'에 해당하지 않으며, 결혼식은 50명 미만, 장례식은 서울의 경우 30명 미만이라면 가능하다.
61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행정명령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식당을 운영하는 A 씨는 "'가족끼리 밥 먹으려면 등본도 갖고 다녀야 하냐'며 손님들 한소리씩 하게 생겼다"라며 "확인이 번거로우니 그냥 4인 손님만 받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식당 업주인 B 씨도 "장례식과 결혼식은 허용되는데 돌잔치는 금지라니 어이가 없다"며 "결혼식처럼 돌잔치도 마스크 끼고 축하만 해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차이를 두는가. 돌잔치는 덜 축하할 일이라서 금지인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 밖에 "골프장은 되는데 왜 스키장은 이용이 금지되는가", "음식점 종업원은 사적 모임에 포함되지 않는데 왜 골프장 캐디는 포함되는가" 등 시민들의 불만이 있었다.
식당에서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정부의 이번 대책은 '10인 이상 모임·행사'를 금지하는 3단계보다도 강력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적인 모임을 어떻게 단속할 수 있을지, 그리고 여전히 5인 미만의 모임은 허용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감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존재한다.
서울 동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75) 씨는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는 기준 자체가 애매해서 손님들조차도 헷갈리는 상황"이라며 "일행이 아닌 척하고 떨어져 앉을 수도 있는데 식당 입장에서 통제를 어떻게 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학생 권모(24) 씨는 "5인 이상 모임 금지 정책이 코로나 확산을 막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소에서는 강제적으로 모임을 금지할 수 있겠지만, 사적인 장소에서의 모임을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확진자가 꾸준히 나오는 상황에서 애매하게 갈 바에는 확실하게 3단계로 격상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한모(30) 씨는 "3단계로 격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은 허술한 미봉책이라고 생각한다"며 "5명이라는 기준 자체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것 같다. 당장 5명 미만이라면 결국 모임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방역 대책에 대해 "제대로 시행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드러냈다. 5인 이상 모임을 제한하는 '핀셋 방역'보다도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의 이번 방역 대책을 두고 "제대로 지켜지면 효과는 있겠지만, 세부 기준이 너무 복잡하다"고 우려했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를 주저하는 데 대해 "하루에도 국민이 20~30여 명씩 사망하고 있다. 코로나19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 방역'이 돼야 하는데 '경제 방역'을 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거리두기를 시행하면 부차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는 건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거리두기 단계를 안 올리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5인 이상 금지니까 송년회, 동문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모임을 공개적으로 못 해서 분명히 부분적인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통해 같이 가서 방을 나누고 파티를 하는 것 등은 사실 찾아낼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천은미 교수는 "1000명이라는 규칙을 정했으면 원래는 3단계를 시행해야 한다"며 "정부 나름으로는 이런 기준을 마련해서 국민이 경계심을 가져달라는 신호인 것 같지만, 문제가 되는 것들만 '핀셋 방역'을 하다 보니까 국민 입장에서도 3단계만큼 방역 효과가 안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피로도는 자꾸 올라갈 것"이라고 봤다. 이어 "3단계 격상을 하지 않는다면 '재택근무'가 필요하다"며 "현재 무증상 감염이 너무 많은데 일정 기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식당 이용도 안 하게 되고 대중교통도 덜 타게 되니까 감염을 차단하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