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정보 탓 진지한 토론 못해
세월호·대통령 탄핵 등 경험
19세·20대 투표율 꾸준히 증가
관심없는 다수와 소수의 공존
이미지 정치화 전락 가능성도
90년대생들은 ‘소셜미디어(SNS)’와 ‘커뮤니티’로 정치를 배우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2017년 ‘인터넷 커뮤니티 및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관련 태도 조사’를 통해 20~30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률이 두드러진다고 발표했다. 40대(74.8%)와 50대(68%)에 비해 20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률은 84.8%, 30대는 86.4%로 높게 나타났다.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가치관 및 관심사가 확실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SNS나 커뮤니티 활용은 활발하지만, 진수 씨처럼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익명을 바라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강동구에서 의료인으로 4년째 근무 중인 이소영(가명·28) 씨는 지역 의료인 오픈 카톡방에 들어갔다. 인원이 많다 보니 극단적 의견도 넘쳐난다. 서로를 웃기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허세 부리는 것 같은 내용도 눈에 띈다. 오픈채팅방 덕에 이슈를 따라가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에서 만난 친구들과 진지한 토론을 하려니 영양가 있는 말이 없어 입이 턱 막혔다.
커뮤니티는 이용자의 관심사를 기준으로 파편화된다. 박정연(가명·28) 씨는 “기존에는 포털이나 신문을 보고 팩트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카톡방이나 커뮤니티에서 필요한 것만 ‘링크’ 형태로 공유된다”며 “본인들 먹고사는 문제거나, 본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문제가 아니면 별로 관심도 없고 접할 일도 없다. 사실 현생(현실생활) 살기 바쁘다”고 얘기했다.
무비판적인 시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주영(가명·25) 씨는 “커뮤니티에서는 글 작성자가 이슈에 대한 입장을 나 대신 세워준다. 정치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있어 보이는 단어로 얘기하니 맞는 말일 거로 생각한다”며 “젊은 신인이 비례 아닌 지역구로 당선됐다는 뉴스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무산됐다는 얘기에 더 기뻐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책이나 정치인보다 당장 먹고사는 이슈가 눈앞이다 보니 입맛에 따라 맹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90년대생들은 정치 참여 효능감이 높다. ‘내가 움직여야 사회가 변한다’를 내재화한 세대다.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정보가 들어오니 이를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김재현(25) 씨는 “90년대생은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정부와 언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대통령 탄핵을 통해 대중이 힘을 모은다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체감했다”며 “90년대생들은 국민청원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떠한 형태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표율이 이를 방증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율 분석’에 따르면 20대의 투표율은 58.7%다. 92년생이 첫 선거를 치렀을 2012년 제19대 총선 19세 투표율 47.2%, 2016년 제20대 총선 20대 전반(초반) 투표율 55.3%와 비교하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20대 총선 대비 19세의 투표율이 53.6%에서 21대 총선 60.9%로 가장 많이 증가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현실 정치에서 튕겨 나오면 문제가 발생한다. 하진경(가명·25) 씨는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싸운다고 하는데, 이게 내 일상이랑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다”며 “페미니즘 이슈와 검찰 개혁 이슈를 밀레니얼 세대에게 들이대보면 무조건 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 대결 구도보다 ‘내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름만 들어봤지 둘이 왜 싸우는지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지혁준(가명·26) 씨도 “국회에서는 소상공인 3차 재난지원금 얘기가 나오는데, 주변을 보면 1차와 2차 재난지원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며 “(현실 정치에서) 나오는 내용과 실제 겪었던 내용이 너무 다르고 현실 정치에서 정해진 내용이 지켜진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지 씨는 지원금을 신청하고 한 달 넘게 대기하던 중, 급작스레 기준에 어긋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담당 기관에 항의 전화를 걸어도 이리저리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지 씨는 “정치를 욕해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피드백이 없으니 굳이 욕을 하고 관심을 가질 바에는 그냥 본인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지나친 비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 씨는 “지역이나 부모님 성향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다. 자기의 신념에 맞게 선택하는 추세가 역행할 것 같지는 않다”며 “소수자나 청년 정치인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젊은층에서 내는 목소리가 조금씩 반영되는 것 아닐까”라고 기대했다.
90년대생들은 향후 정치 생태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양 씨는 “관심 있는 소수와 관심을 꺼버린 다수가 갈릴 것 같다. 제발 투표 좀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 투표율은 높게 나오지 않을까”라며 “평소에 깊게 안 보다가 투표를 하면 그래도 착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할 것 같다. 이미지 정치로 천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