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궐 선거 이후 내부갈등 터져나올 듯
대통령 임기 말이 되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레임덕이다. 통상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 생기는 원심력에 여당이 반기를 들면서 시작하는 양상이다.
근래 문재인 정권의 당청 간의 이견마다 정치권의 관심이 모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기를 불과 1년 남긴 상황이라 언제 레임덕이 와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을 끄는 건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당청이 일심동체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게 검찰·사법개혁이다. 지난해 단독 법 개정까지 강행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키고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헌정 사상 최초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치를 공개 지지하며, 올해는 의원총회에서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위해 스스로 꺼내든 재난지원금과 손실보상제도 제쳐두고 법관 탄핵 논의를 한 문재인 정권이다.
이런 현 정권에서 속도조절론을 띄운 건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해 “대통령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다.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 된다는 차원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2단계 검찰개혁인 검찰에 남은 6개 직접 수사권까지 모두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기는 안에 대한 일반적 비판과 상통하는 내용이라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론을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단계 검찰개혁은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뒤 두 달밖에 안 돼 또 다시 제도 변경을 하는 건 성급하고, 검찰의 6개 직접 수사권을 넘겨받을 만한 역량을 가진 기관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더구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간부 인사 과정에서 배제된 건으로 사의를 표해 어수선한 상황이었기에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주문했다는 데 더욱 신빙성이 실렸다.
논란이 되자 박 장관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번복에 나섰지만, 지난 24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속도조절론 관련 질의에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께서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말해 다시 불을 붙였다.
현재는 26일 청와대와 민주당이 적극 당청 이견이 없다며 3월 법안 발의 및 6월 처리 계획은 그대로라고 강조한 상태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처럼 당청이 일제히 급하게 진화에 나선 건 레임덕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오히려 더 드러내는 꼴이다. 사건 순서상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박 장관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냈는데, 논란이 되자 민주당이 휘어잡은 모양새라서다.
다만 당장 레임덕이 강하게 나타나진 않을 전망이다. 일단 당청 이견 논란은 코앞인 4월 재보궐 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는 만큼 그 전에는 억지로라도 합이 맞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40% 내외로 민주당 지지율을 상회하고 있는 상황이라 여당이 쉽사리 반기를 들 수 없다.
신동근 최고위원이 26일 내놓은 발언도 이런 측면에서 나왔다. 신 최고위원은 “각종 여론조사를 봐도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보다 10%가량 높다. (레임덕 해석이) 얼마나 근거 없는 궁여지책인지 알 수 있다”며 “보수 야권은 당정청이 일체적 모습을 보이면 전체주의라 하고 이견을 보이면 엇박자라고 하다 이제는 레임덕이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를 마치고 민주당 대표 선거에 돌입하면 레임덕의 단초가 될 내부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먼저 검찰·사법개혁 불도저식 강행에 문제의식을 느낀 중진의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또 당내 비주류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여론조사상 압도적 지지율을 내세워 일부 현역 의원들을 끌어들이며 세력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복잡다단한 상황이 당 대표 선거를 거치며 수면 위로 드러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