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정비사업 옥죈 정책이 집값 참사 불러"
도시 정비·택지 조성 '쌍끌이 개발' 필요
2014년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당시만 해도 주택 경기가 하강하면서 더 이상 대형 택지를 개발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대형 택지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택촉법 폐지는 정치적 사정으로 불발됐지만, 이 같은 기조 탓에 박근혜 정부 들어 신규 지정한 공공택지지구 면적은 연평균 138만㎡로 직전 이명박 정부(연평균 1440만 ㎡)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당시 관가와 학계에선 택촉법 폐지를 전제로 공급 대안을 마련하는 데 분주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2014년 수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택지 전문가들은 택촉법 폐지로 민간 주도 재개발 및 도시재생 사업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민간 주도 정비사업 외에는 택촉법에 의존한 대형 택지 조성을 대체할 주택 공급 방안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용적률이나 재건축 부담금 등 민간 주택 공급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박근혜 정부 퇴진 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여권은 반대 기조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주변에서 비롯된 집값 상승을 경계했다. 지난 정권에서 완화한 재개발·재건축 규제도 원상 복귀했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세가 거세지자 집권 1년 만에 3기 신도시(하남 교산·남양주 왕숙·인천 계양·고양 창릉·부천 대장지구) 건설을 선언했다. 올해도 경기 광명·시흥지구를 6번째 3기 신도시로 추가해 집값 잡기에 나섰다.
문제는 전·현 정부간 주택 공급 방법론이 양극단으로 갈리면서 주택 공급에 단절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택지 공급에 소극적이었고, 문재인 정부는 그 대안인 민간 정비사업을 백안시한다. 여기서 주택 정책 스텝이 꼬였다. 3기 신도시 건설로 부족한 주택을 채운다곤 하지만 빨라야 2024년 첫 입주 아파트가 나온다.
3기 신도시에 치중하는 동안 낡아가는 도심 주택도 문제다. 준공 후 30년이 넘은 노후주택은 서울에서만 55만 가구(2019년 기준)에 이른다. 서울 주택 다섯 채 중 한 채 꼴(18.6%)이다. 경기지역에서도 1990년대 초반에 지은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올해부터 줄줄이 입주 30년차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신규 택지와 기존 도심 개발이 균형을 이루면서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택지 개발과 도심 정비가 상호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어느 한쪽을 간과했다간 지난 5년처럼 '주택 공급 절벽'에 시달릴 위험성이 커진다.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도심 정비사업은 직주 근접성이나 공간 활용도 면에서 효율적이지만, 토지 가격이 비싸고 이해관계 조율에 장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다. 반면 공공택지 개발은 공공이 수용권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빠르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잉 공급 우려와 공공기관 부패라는 잠재적 위험성도 안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A씨는 "도심 주택 수요는 늘 발생한다.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서울 주택 수요가 빠지지 않는다면 서울 외곽에 신규 택지를 건설할 필요성은 상존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형 택지에 대한 장기적 관리 방안도 필요하다. 대형 택지는 수용 인구가 많은 만큼 공동화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에선 자칫하다가 인구 감소로 슬럼화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 신도시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3의 길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인구 등을 고려한 적절한 주택 공급 방안이 필요하다"며 "서울에 산재된 국ㆍ공유지만 제대로 활용해도 지금 같은 규모의 신도시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