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안전公 올해 8차종 테스트, 벤츠와 BMWㆍ제네시스 안전도 뛰어나
지난 22일 경기도 화성에 자리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충돌 시험동.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충돌 벽면을 중심으로 환한 LED 조명이 켜진다.
전체 출동 시험동은 약 3층 높이. 내부에 들어서면 기둥이 없고 바닥부터 시험동 천장까지 뻥 뚫린 구조다. 한 쪽에 작은 사무동과 참관실이 자리하고 있다.
시험동 중앙 바닥은 쭉 뻗은 레일이 놓여있다. 실외, 즉 시험동 바깥에서 출발한 충돌 시험차가 연결통로를 거쳐 실내로 달려오는 구조다. 그 레일 끝에는 단단한 고정 벽이 '우뚝' 버티고 있다.
본지 수습 기자 9명과 이곳을 찾은 것은 이날 오후 3시께. 안전을 위해 시험장 한쪽에 마련된 ‘참관실’로 들어섰다. 커다란 전면 유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차가 달려와 왼쪽에 자리한 고정벽면에 충돌한다.
이윽고 이곳저곳에서 노란색 경광등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사이렌 소리에 놀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긴장감이 물밀듯 밀려오며 가슴팍을 짓누른다.
이날 충돌 테스트의 주인공은 현대차 4세대 신형 투싼. 울산공장을 빠져나온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새 차다.
참관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절대 충돌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라는 절박함이 가득하다.
아까부터 두 눈을 크게 뜨고, 충돌 지점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다. '미간'에 힘을 주다 보니 슬며시 눈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눈 감으면 큰일…"을 되뇌던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시속 56km로 돌진해 온 투싼이 고정벽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 깜짝하는 순간 ‘꽝~’하는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고정 벽에 충돌했다.
사정없이 벽을 향해 돌진했던 투싼이 '반동' 탓에 슬그머니 뒷걸음질 친다. 앞범퍼와 보닛은 이미 형태가 사라질 만큼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찌그러진 보닛 사이로 하얀 연기까지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교통안전공단 연구원들이 사흘 가까이 준비한 투싼의 정면충돌 테스트는 그렇게 0.1초 만에 디지털로 결과를 뽑아내고 끝났다.
연구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신형 투싼의 주변을 정리한다. 추가 폭발 또는 연료 누유 등 위험 여부도 체크한다. 그렇게 현장이 정리된 이후 마침내 참관에 나섰던 본지 기자들의 접근이 허용됐다.
코가 납작해진 신형 투싼 곁에 다가서니 매캐한 냄새가 진동한다. 찌그러지고 깨진 탓에 여전히 날카로운 부품이 남아있다.
충돌 데이터는 이미 나왔다. 이제 직접 조사할 항목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먼저 충돌 이후에 도어는 잘 열리는지 확인한다. 단순하게 문을 열어보는 게 아니다. 얼마만큼(열림 각도) 열리는지, 어느 정도의 힘(뉴턴 미터)으로 열 수 있는지까지 확인한다.
도어 손잡이에 ‘디지털 계측기’를 걸어놓고 손으로 잡아당기면서 결괏값을 얻어낸다.
1차 확인결과 신형 투싼의 도어는 모두 잘 열렸다. 부상을 최소화하는 에어백도 모두 전개됐다. 이를 포함해 구체적인 평가 결과를 뽑아내는데 다시 며칠이 더 필요하다.
테스트 차는 제조사가 공짜로 주지 않는다. 교통안전공단이 직접 일반 소비자와 같은 방식으로 구매한다.
현재 우리나라 충돌 안정성 분야 평가 항목은 △정면(100%)충돌과 △부분 정면(40%)충돌 △측면 △측면 기둥 충돌 등 8가지다.
한번 테스트를 마친 차는 재사용하지 못한다. 이미 골격 자체가 뒤틀어졌기 때문이다. 정면충돌 테스트를 마친 차를 후면 테스트 때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차 1종의 테스트를 위해 총 4대의 신차가 필요하다. 올해 총 8개 차종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적어도 32대의 신차가 찌그러지고 망가진다는 뜻이다.
"전부 새 차들이냐"는 질문에 공단 관계자는 기다렸다는 듯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새 차의 가치보다 안전한 차에 대한 가치가 훨씬 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올해는 테스트하는 차 8종 가운데 4차종이 전기차다.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는 친환경 전기차 흐름에 맞춘 정책이다.
전기차 4종은 △메르세데스-벤츠 EQA △현대차 아이오닉 5 △테슬라 모델3 △쌍용차 코란도 e-모션 등이다. 이 가운데 코란도 전기차(e-모션)는 국내 출시가 내년으로 미뤄졌다. 현재 다른 차종을 검토 중이다.
내연기관 모델은 이날 정면 테스트를 마친 현대차 투싼을 비롯해 기아 스포티지, K8 등이다.
시험 대상은 출시 시점과 판매량을 고려해 선정한다. 국산차의 경우 출시 시점에 맞춰 대상을 뽑는다.
수입차는 판매량 상위 모델을 중심으로 선정한다. 예산이 제한적이고 차 가격 자체가 고가이다 보니, 많이 팔린 수입차를 중심으로 테스트한다.
작년에는 총 11개 차종을 대상으로 안전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2020 제네시스 G80이 종합 97.3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96.3점을 받은 △2020 BMW 320d의 안전도가 높았다.
종합 점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성적표를 보면 △2017 BMW 520d가 역대 1위, △2017 메르세데스-벤츠 E 220 d가 2위에 올랐다.
역대 3위는 지난해 선보인 제네시스 3세대 G80이다. 이어 현대차 아슬란과 BMW 320d, 현대차 넥쏘와 팰리세이드 등이 4~6위에 이름을 올렸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충돌 테스트를 반복해보면 ‘크고 무겁고 비싼 차가 안전하다’라는 게 진리다”라며 “안전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가장 최근에 나온 신차의 안전도 점수가 높은 게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충돌 시험의 뒷면에는 연구원들의 말 못할 고충도 담겨있다.
갑작스레 도로 위에 뛰어든 보행자를 차가 인식하고, 스스로 급정거하는 '보행자 안전장비' 테스트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모형이지만 실체 차를 운전하는 연구원들은 이 상황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특히 어린이 보행자를 가정한 마네킹과 충돌할 경우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는다.
자동차안전연구원 장형진 부장은 "이런 테스트를 추진하는 게 교통안전공단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반복되는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법도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