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경제부장
지난달 중순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앤드루 양의 극적인 몰락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18세 이상 전 국민에게 월 1000달러(약 110만 원)를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제 공약으로 전국적인 스타가 되고 ‘양 갱(Yang Gang)’으로 불리는 온라인 열성 팬들을 탄생시켰던 앤드루 양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의 패배에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 뉴욕시에서 핵심 이슈로 떠오른 치안 문제에 서투르다는 인식, 25년간 뉴욕에서 생활했지만, 정작 시장 투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력,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역으로 타임스스퀘어 역을 꼽자 뉴욕 사람이라면 관광객이 붐비는 해당 지역을 잘 가지 않는다는 ‘진짜 뉴요커’ 논란까지 그에 대한 공격이 줄을 이었다.
그의 전매 특허인 기본소득도 공격의 주된 대상 중 하나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4월 뉴욕타임스(NYT)에 올린 칼럼에서 “계산기는 두드려 봤나”라며 막대한 비용 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양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공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본소득제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이를 진지한 정책과제로 본 것이 아니라 단지 정치 구호로만 가져간 것이 앤드루 양이 급격히 몰락한 근본적 원인처럼 보인다.
그는 기본소득제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뉴욕시장 선거전에 임하면서 제시한 공약은 사실상 기본소득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뉴욕시민 전체에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대신 빈곤층 50만 명에게 연간 2000달러를 제공한다는 것이 공약의 핵심이었다. 뉴욕시 전체 인구의 약 6%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앤드루 양이 뉴욕시장에 당선돼 자신의 공약을 실행에 옮긴다고 가정하더라도 맞닥뜨리게 될 문제가 어마어마했다. 시민 중 아주 일부에만 적용된다 하더라도 시 예산의 10분의 1에 달하는 10억 달러(약 1조1285억 원)의 자금이 필요했다. 이런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양은 부자 증세 언급을 피했다. 블룸버그는 “뉴욕에는 112명의 억만장자가 살고 있고 추가로 7700명 재산은 최소 3000만 달러가 넘는 미국에서 부자가 가장 많이 있는 지역인데 양은 소득세 인상 논의를 피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50만 명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의료비 지원 등 다른 복지제도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 등의 의문에 대해서도 양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앤드루 양은 기본소득제 주장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는데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한 셈이다.
그의 정치적 열망이 씁쓸한 실패로 끝날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제가 무엇인지 대중의 관심을 끌게 했다는 점에서는 그 공을 인정받을 만하다.
앤드루 양을 스타로 만들 정도로 사람들이 기본소득제에 호응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 정치인이 곱씹어 봐야 한다. 복지에 들어가는 방만한 예산에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는 사람들의 좌절감이 기본소득제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게다가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부상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예로 들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강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기본소득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 제도를 자신의 간판 정책으로 내걸고 있고 야권도 기본소득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를 현재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꼭 기본소득이 아니어도 좋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의 복지제도가 지금처럼 갈 수는 없고 대규모 개혁이 필요하다. ‘용두사미’가 된 앤드루 양의 기본소득제 논의와 정반대 상황이 한국 대선 과정에서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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