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공자는 "나이 서른이면 뜻과 신념을 세운다"(三十而立)고 했다. 한데 오늘날의 '서른'은 뜻은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다. 비싼 월세에 허덕이고, 직장 생활에 골머리를 앓으며, 집안의 압박에 원치 않는 선 자리에 불려간다. 겨우 서른일 뿐이다.
화려하지만 치열한 도시 상하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서른 살을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구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방에서 상경한 명품관 직원 만니, 아이를 원하지만 경제 문제가 발목을 잡는 직장인 샤오친까지. 넷플릭스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 2020) 이야기다.
드라마 '겨우 서른'은 상하이에 사는 서른 살의 세 주인공, 구자와 만니 샤오친의 삶을 담은 드라마다. 중국 최대 경제 도시인 상하이답게, 이곳에 사는 이들의 삶은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작품 속 중국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중국이 아니다. 상하이는 여느 국제도시와 다를 것 없이 화려하고 윤택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앞서 나가 있다.
중국은 카드, 온라인 결제를 넘어 QR코드가 대세인 캐시리스(Cashless) 사회다. 결제는 물론 송금까지 모두 QR코드가 대신한다. 보통 현금 사회에서 신용 사회로, 신용 사회에서 캐시리스 사회를 거치는데, 중국은 신용 사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캐시리스 사회에 진입했다. QR이 일상화된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주인공 샤오친과 만니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샤오친은 만니에게 급하게 200위안을 빌린다. 만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지 않고 바로 휴대폰의 QR코드를 내민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어느 나라나 그렇듯 화려한 도시의 삶을 감당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고향 취저우에서 상하이로 상경한 만니는 명품관 직원으로 일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모아놓은 돈은 별로 없다.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쓰기 때문이다. 상하이 생활 8년 차, 집안에서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적당한 남자와 결혼하라고 아우성이지만, 만니는 도시 생활을 포기 못 해 악착같이 버틴다.
실제로 상하이 집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하이 분양 주택의 평균가격은 6만 위안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초 상하이의 8학군이라 불리는 '쉐취팡'(學區房) 지역은 3.3㎡당 최고 190만 위안(元·약 3억2000만 원)을 넘었다. 1㎡당 1억 원에 가깝다. 올해 중국 당국은 상하이 집값을 잡기 위해 수 차례 부동산 시장 대책을 발표했다. 고공 행진하는 집값에 각종 규제 대책을 쏟아내는 게 우리와 닮았다.
상하이 도시 노동자의 임금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도시 경제 통계를 제공하는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상하이 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1만1002위안(약 194만 원)에 불과하다. 불법 쪼개기 임대 등이 성행하는 이유다. 지난달 상하이에서는 27평 아파트에서 39명이 불법 거주하다가 적발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실제 중국에서는 비싼 월세와 저임금에 희망을 잃고 나가떨어진 청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른바 '탕핑'(躺平)주의다. 탕핑은 중국어로 '평평하게 드러누워 살자'는 뜻으로, 아등바등 경쟁 하지말고 편하게 살자는 흐름이다. 탕핑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청년들은 집·차·결혼·아이·소비 등 5가지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의 N포 세대와 닮았다.
한데 탕핑은 현재 중국에서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금지어다. 신화통신·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는 '탕핑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논평을 게재했고, 웨이보 등 SNS에서는 탕핑이 검색 금지어로 지정됐다. 지난달 치러진 대입 논술 '가오카오(高考)'에서는 탕핑과 반대되는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가 논제로 등장했다. 너무 힘들어 드러누운 청년들을 당국이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모양새다.
드라마 '겨우 서른'은 중국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많은 공감을 샀지만, 실제 중국 젊은이들의 삶을 완전히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품 속에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청춘들의 노력은 빛나지만, 구자와 만니, 샤오친 모두 오늘날 평범한 중국 청년들의 고민을 대변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많이 가졌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검열 때문에 지리멸렬한 가난이나 진짜 현실을 다룬 콘텐츠가 나오기 어려운 중국의 또 다른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중국 극장가와 TV는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온통 붉은 물결로 가득하다. 당과 국가를 선전하는 장르 '주선율'(主旋律) 영화가 따로 있을 정도다. 서른 즈음 성장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겨우 서른'이 그나마 붉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