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서상익 작가 "호크니·우드·보레만스가 공존하는 세상이니까"

입력 2021-07-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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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경계' 그 어디쯤…"수행자 아닌 감독으로 작품 접근"

▲서상익 작가가 서울 성동수 성수동에 위치한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신작 '이미지 풍경 1 - 디올과 군상' 앞에 선 서 작가.2021 (김소희 기자 ksh@)
"제가 어떤 포지셔닝을 가졌을 때 가장 빛날지 고민했죠. 뭐든 두려워할 게 없다고 판단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 조나스 우드, 미카엘 보레만스가 공존하는 세상이니까요!"

서상익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까지 작업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아뜰리에 아키에서다. 전시 제목은 '콜드 온 어 웜 데이(Cold on a Warm Day)'으로, 서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표현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자기 성찰을 통해 구축한 서 작가만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만나볼 수 있다. 서 작가의 새로운 고찰은 초기 사진적 표현에서 나아가 점들로 쌓아 올린 면, 단순화된 선, 디테일이 생략된 공간 등의 변화된 표현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제목은 언더커버로 활동하는 작가 이방인이 서 작가에 대해 남긴 평에서 착안했다. 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근거리에서 꾸준히 봐온 이방인에게 이번 개인전과 관련해 짧게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 이방인이 서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가 '차가움'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동의했어요. 제 작품을 보면 뜨거운 발언, 봉기, 주장보다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비꼼 혹은 농담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죠. 네거티브가 빠진 그림에서도 끝없이 보이는 건 적극적인 참여보다 한발 물러서서 감정을 배제한 관찰자 입장이거든요."

그의 작품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일요일 오후 4시'다. 침대 위에 수사자가 무료한 듯 누워있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무료하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던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상상과 현실이 몽롱하게 결합한 결과물이다. 이때 받은 긍정적인 평가가 작가의 작품관에 영향을 미쳤다. 그저 '잘 그린다'는 칭찬만 있을 뿐 동기가 약했던 그에게 '호불호'가 생기기 시작한 거다.

▲서상익, 강변유람 - 외로움의 균형(2021). (사진=아뜰리에 아키)

"처음엔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도 안 섰어요. 제 작품의 이미지를 확 바꿀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선후배, 친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불호가 있어도 평가가 만들어지는 게 좋았어요. 무플뿐이었는데 악플과 선플이 달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작가와 거리가 너무 가까운 그림은 힘들고 부담스럽다'는 작가의 태도와 위치는 형식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적 표현을 벗어났는데, 그럴수록 작가만의 차가움이 더 강해진다.

"그림 속 인물의 역할이나 역학적인 구조도 뜨겁고 동작적이기보다 몰래 관찰하는 느낌이죠. 작업이라는 게 작가로서 개인과 삶의 주체로서 개인을 아무리 분리하려 해도 한두 개는 아닌 척할 수 있지만, 포트폴리오 속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요. 원래 매정하단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고요. 하하."

작가 존재 자체를 숨겨버리는 것도 관찰자적인 기록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그다. 서 작가는 "사람들이 정을 갖고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관계를 맺는 것이 절대 선(善)이냐는 되물음도 있었다.

"코로나19로 답답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억지로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소외되고 인간관계 좁은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억지로 맺는 관계들도 있을 테니까요."

▲서상익, 익숙한 풍경 - Welcome(2019). (사진=아뜰리에 아키)

그의 이전 작업물들을 보면, 서 작가만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비현실적인 걸 사진적으로 담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젠 방식부터 달라졌다. 서 작가는 그림을 수행자로서 접근했던 것에서 디렉터로 임하려 한다고 했다. 예전엔 대상을 어디까지 어떻게 기록하고 바라볼지 큰 주안점을 뒀다면, 요즘은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료를 찾고 사진을 찍으러 나가거나 부합되는 걸 찾았는데, 이젠 만들어버리죠. 모든 공간이 없는 공간이 돼버렸어요. 그리고 싶으면 맞춰서 끌고 오면 되겠더라고요. '저거 빼고, 공간을 다시 만들자'는 식으로 접근해요. 요즘은 제가 제게 지시해요. 감독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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