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나와 어릴 적 살던 동네로 향했다. 학창시절에만 해도 아파트 단지가 거의 없었던 이곳이 이젠 모두 아파트 단지나 빌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내가 살았던 집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뭔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1990년대 초 컴퓨터가 보편화하지 않았던 시절, 동네 형·누나들과 거리에서 땅따먹기, 딱지치기, 다방구, 고무줄놀이 등을 하면서 어울렸고 그렇게 추억은 하나하나 만들어져 갔다. 그렇게 추억을 쌓아가면서도 어릴 적 난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기 일쑤였다. 친구들의 집에 가면 함께 놀 수 있는 게임기와 장난감은 나에게 무척이나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친구 집에서 놀고 돌아오면 반기는 것은 반지하 전세방이었다. 어쩌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은 것은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이런 우리 집이 좋았다. 이곳에선 우리 네 식구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희망을 이야기했고, 추억을 만들어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남의 집이라 불편할 뿐, 우리 집만 한 곳이 없었다. 어쩌면 이 노랫말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약 30년이 흘렀으니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어린 마음에 나이가 들면 돈을 벌어서 내가 꼭 이 집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을 우리 부모님도 모른다. 그만큼 내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이었고, 30년이 지난 아직까지 집 주소도 외우고 있다.
만일 내가 살던 집이 완전히 달라졌다면 이런 추억을 이제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당시 살던 집의 옆집을 보니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어릴 때만 해도 내 친구가 살던 주택이었는데, 달라진 모습을 보니 왠지 내 추억도 함께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 추억의 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난달 KBS 2TV '대박부동산'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드라마에서는 귀신 붙은 집 매매 전문인 주인공의 부동산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집의 사연들을 다뤘다. 혼자 사는 여성의 주거 불안, 분양 사기, 고독사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담았지만, 그만큼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추억도 그려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4년간 부동산 정책만 26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고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 주도 주택 공급을 통한 집값 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집값이 잡힐지는 미지수다.
지금 국민은 교통도, 교육 여건도, 공기도 좋은 환경에서 추억을 만들어갈 집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은 이야기한다. "내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집을 물려줄 수 있게 해주세요. 닭장 같은 주택에 몰아넣고 아침·저녁 없이 이어지는 교통난 속에 숨쉬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서는 안 돼요." 과연 정부는 많은 사람이 평생을 추억할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