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련·인니·태국, 싱가포르 '위드 코로나' 따르려
마스크 착용 의무 기한 수년으로 늘릴 계획
지역 봉쇄 대신 이동 거리, 장소 특성에 따라 표적 방역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억제와 경제 회복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군납 식품 제공부터 노동자 격리, 소규모 록다운(봉쇄), 식당·사무실의 제한적 접근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백신 접종률이 낮아 델타 변이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호주뉴질랜드은행그룹(ANZ)의 크리스탈 탄 이코노미스트는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접종률을 기록했음에도 감염자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접종률이 낮은 나머지 국가들에선 경제 재개방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경기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냥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미 과도한 경기부양책은 국가 재정을 흔들고 있고 통화정책 화력도 예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주 말레이시아에선 반도체 회사 유니셈의 공장 직원 세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하자 7일간 공장을 폐쇄했다. 공장 문을 닫기 전까지 올해 들어 약 3억6000만 달러(약 4232억 원) 매출을 올리던 유니셈은 이번 공장 폐쇄로 연간 생산량이 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공장 폐쇄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의 생산 규모를 감축시키는 등 공급망 문제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3~4%로 하향했다. 종전 전망치의 절반 수준이다.
필리핀에선 정부가 통제 완화 계획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8일 계획을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발소와 레스토랑 등 시민들이 자주 찾는 소매업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당국은 마닐라와 인근 지역에서 시행 중인 이동 제한 조치로 일주일간 740억 페소(약 1조7397억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신규 확진자를 억제하는 대신 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하는 싱가포르의 ‘위드 코로나’ 정책을 따라가기로 했다. 특히 동남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는 장기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당국은 이동 제한을 연장하는 대신 수년간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을 준비 중이다.
표적 방역도 늘고 있다. 필리핀은 국가 또는 지역적 봉쇄 대신 이동 거리나 집 주변의 특정 장소에 대한 제한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베트남 역시 유사한 전략을 테스트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쇼핑몰이나 예배 장소에 들어가려면 백신 접종을 인증하는 카드를 지참하게 했고 싱가포르는 식당이 손님의 접종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다만 이 같은 전략도 문제는 있다. 블룸버그는 “이것이 더 광범위한 경제에 미치는 피해는 줄일 수 있지만, 백신의 불평등한 분배로 저소득층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