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오픈런(수량이 한정된 상품을 사기 위해 매장 개장 전부터 대기하는 것)까지 불사하며 롤렉스 시계를 산 소비자의 푸념이다. 예상치 못한 가격인하에 불과 며칠새 가격이 뚝 떨어진 탓이다. 가격 인상도 아닌 인하를 두고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짜리 물건을 팔면서도 소비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가격정책을 펼쳐온 명품브랜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모습이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지난 1일 가격 조정을 단행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연초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격 인상과 인하를 함께 해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롤렉스는 서브마리너 라인과 데이저스트 라인 일부 품목 값을 8~16% 인상했다. 이와 함께 데이저스트 31mm 모델 오이스터스틸·옐로우골드 모델 가격은 1818만 원에서 1680만 원으로 8%(138만 원) 인하했고, 같은 라인 28mm 모델도 1615만 원에서 1572만 원으로 3%(43만 원) 내렸다.
이에 가격 인하 전에 해당 상품을 사들인 구매자들은 불만을 표했다.
명품 정보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지난해 말 매장 두 군데를 돌았는데 이 모델만 있었다. 원하는 게 아니라도 그냥 샀는데 (가격이 내려갔다) 매장에서도 인하될 것을 알고 그 모델만 푼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물량이 없어서 팔지도 못하는 모델인데, 다른 라인이 인상하니 면피용으로 값을 내린 것 같다”며 “롤렉스로서는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부 구매자들이 가격 인하에 반발해 환불을 요구했으나 롤렉스는 ‘환불 불가’ 원칙을 들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계는 판매와 동시에 각 상품에 부여된 시리얼 번호에 구매자 이름이 저장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판매 전에 교환·환불이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때문에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롤렉스를 비롯한 명품브랜드들은 막무가내식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을 유발해왔다.
올해 초 롤렉스를 시작으로 ‘에르메스’와 ‘샤넬’, ‘고야드’, ‘델보’, ‘티파니앤코’ 등 다른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설도 떠오른 상황이다.
연초 인상은 그나마 양반이다. 명품 시장에서 으레 해온 ‘정례 행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와 ‘루이뷔통’, 프라다‘는 지난해에도 연초에 가격을 올렸다.
그러나 이유와 시기를 알 수 없는 급작스러운 가격 인상도 많아 구매자들은 불안을 호소한다. 명품 구매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다르게 특정 브랜드 인상 소식을 공유하거나 인상 여부를 묻는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오늘 사는 게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샤넬, 루이뷔통, 프라다는 각각 4·5·6회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2~3달에 한 번꼴로 값을 올린 셈이다.
가격을 수시로 조정하면서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도 않아 더욱 반감을 불러온다는 평가다. 대부분 “본사 방침에 따라” 혹은 “제작비와 원재료, 환율 변동” 등을 인상 요인으로 설명하지만 영 시원치 않다.
상품 가격을 올려 과시적 소비를 뜻하는 ‘베블런 효과’를 노린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4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명품 가격 인상을 두고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인상을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명품 시장은 매해 급속성장 중이다.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5% 성장한 141억 달러(약 16조 원)로 세계 7위를 차지했다.
2020년 기준 루이뷔통은 한국에서 1조486억 원, 샤넬은 9296억 원, 에르메스는 419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하면서 ‘보복 소비’가 명품 시장에 몰렸고, 코로나19 이전부터 ‘선택적 럭셔리’, ‘플렉스’ 문화 등이 부상하며 명품 수요를 끌어 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