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디까지 사찰한 거죠?
영상 곳곳에서 웃음과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공감의 소름, 지독한 현실 고증에 대한 감탄, 그리고 누가 나를 사찰하나 의심 가득한 시선까지 이어지죠.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의 은혜를 받은 떡상 채널 ‘숏박스’와 ‘사내뷰공업’ 이야기입니다.
“너 이거 봤어?”라는 주변 이들의 추천이 이어졌죠. 그들의 권유는 “너도 공감할 거다”라는 당연한 확신과 함께합니다. 그 확신의 물음은 “뭐야 이거! 나인 줄?”이라는 감탄의 답장 순서로 공식인 듯 흘러가는데요.
도대체 무엇을 보여준 걸까요?
알고리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한 달 만에 구독자 1만 명에서 76만 명으로 훌쩍 뛰어버린 ‘숏박스’ 채널. KBS 공채 개그맨 30기 김원훈, 31기 조진세가 결성한 유튜브 채널인데요. 지난해 10월 첫 업로드를 시작으로 짤막한 콩트 영상을 올려왔죠. 하지만 주목은 받지 못하다가 지난달 13일 업로드 한 ‘장기연애-모텔이나 갈까?’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떡상했죠.
이 영상에는 KBS 32기 공채 개그맨 엄지윤이 참여했는데요. 무려 11년의 장기연애 중인 커플 김원훈, 엄지윤이 보여주는 ‘현실 장기연애 커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그간 ‘현실 연애’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왔지만, 이건 달랐는데요.
시청자들을 웃기려고 상황을 어렵게 꼬아놓거나, ‘사랑’이 식어버린 권태기 가득한 커플로만 나오던 ‘장기 연애 콩트’가 아니었죠. 너무나 익숙한 그렇지만 똑같은 그래서 정이 가는 ‘장기 연애’ 커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떡상 영상 이후인 10일에 업로드 된 ‘장기연애-예쁜 카페’는 현실 고증의 완결판이었는데요. 등장부터 많은 커플의 소름 박수를 받았죠. 힘껏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등장하는 남자친구 뒤에 손을 대지 않고 쑥 입장하는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너무나 익숙한 여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당연한 듯이 커피를 주문하고요. 달달구리를 원하는 여자친구의 추가 주문에도 아무 말 없이 “저것도요”라고 무심히 말하죠.
자리에 앉은 이들은 전혀 대화가 없고, 진동벨이 울리자 너무나 당연한 순서로 남자친구가 주문을 찾으러 갑니다.
익숙하게 먹는 것을 세팅한 뒤 의자를 뒤로 쭉 빼고 기다리는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포토 타임이 바로 진행될 것을 잘 알기 때문인데요. <여자친구의 포토 타임을 그저 멍하니 바라봅니다. 여기까지도 폭소가 터지는 그저 소름 돋는 데이트의 한순간이었지만, 절정은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여자친구의 폰을 넘겨받은 남자친구는 익숙한 카메라 필터를 찾아 그간 찍어왔던 구도 그대로 그저 내가 하나의 카메라인냥 셔터를 누르는데요. 여자친구가 원하는 ‘감성’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틴트 덧칠도 카메라 필터 변경도 요구하죠.
절정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여자친구의 검토 타임. 남자친구가 넘겨준 촬영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남자친구. 그 표정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죠. 그저 이것은 카페와 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깐요. 동기도 없이 그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묵묵히 견디는 남자친구입니다.
“현직 카페 사장인데요. 이건 다큐입니다. 따봉 두 개 박고 갑니다”
이걸 누가 콩트라고 했나요. 이것은 다큐입니다. 카페 가면 만날 수 있는 커플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죠. 거기다 이어지는 여자친구의 요청 “들고 있어 봐”. 결국 남자친구의 사진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셀카 모드로 건넨 핸드폰을 자동 셀카봉처럼 촬영 버튼을 눌러주는 그. 진짜 내 남자친구 아닌가요?
영상 댓글에도 이건 사찰 수준이라는 호응이 이어지는데요. “자연스럽게 의자 뒤로 빼는 거 현실적이라 개 웃김”, “문에 손 안 대고 입장할 때부터 이건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됨”, “개그가 아니라 진짜 극사실주의 예술작품”. 댓글조차 놀라움으로만 가득 찼죠.
이런 현실 고증 ‘하이퍼리얼리즘’ 영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요. 사내뷰공업 채널에 올라온 ‘알바공감’도 민간사찰 영상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다이소, 올리브영, 편의점 등 MZ세대들의 주된 알바 장소를 공략했는데요.
항상 필요한 걸 있으면 말하라지만 찾을 수 없는 올리브영 알바생, 쳐다보지도 않고 필요한 물건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다이소 알바생, 이름이 어려운 수많은 담배에 허둥대는 편의점 알바생까지… 그냥 우리 동네 그 알바생 아닌가요?
잠시 잠깐 비치는 그 표정이 진짜 압권인데요. 말투부터 표정까지 어제 봤던 그 알바생, 아니 방금 만나 본 그 알바생을 옮겨놓은 현실 고증. “나, 이 사람 본 적 있어”라는 댓글이 달리는 이유죠.
이 극사실 다큐콩트의 인기 비결은 진짜 ‘그대로’ 옮겨놨다는 건데요. 과장도 허상도 없이 그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장기연애 커플의 그 익숙하고 단조로운 하루하루지만, 그 가운데는 앞사람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데요. 익숙한 다정함. 격한 대화가 오고 가도 마음이 느껴진다는 그들의 하루가 ‘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또 그 ‘찐’을 발견한 ‘하이퍼리얼리즘’ 영상에 오늘도 당연한 듯이 ‘좋아요’를 누르고 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