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죽음, 더는 안 돼"
변 하사 친구 "희수는 20대 초반의 유쾌한 사람"
변호인 "당사자 없는 승소, 과연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콕에서 발견된 변하사 전투복, 교민 도움으로 돌아와
27일 오후 2시 서울 신촌.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곱게 물든 안개꽃이 故 변희수 하사 사진 앞에 하나둘씩 쌓였다. 하늘과 분홍은 트렌스젠더를 상징한다. 이날 변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변 하사 1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들로 광장은 붐볐다. 부산에서 온 구슬 씨는 "그분(변 하사)에게 빚진 어제를 기억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서울에 왔다"며 "변 하사는 성소수자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배타적인 사회 구조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도 같은 성소수자로서 고마운 마음과 슬픈 마음이 같이 들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인 홍정선 씨는 "오늘이 변 하사의 1주기인데, 운명을 달리한 그 날 밤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그 밤을 함께 있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미안함을 느낀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이 나라에서 생기면 절대로 안 된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공대위는 이날 2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변 하사의 변호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변 하사가 용기를 내서 걸어갔던 그 길에서 우리는 이 전역처분 사건을 승소했지만, 과연 당사자 없는 이 사건의 승소를 과연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애도했다. 이날 추모문화제 참석자들은 이선희의 '인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추모식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세정 씨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자들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사실 주요 대선주자들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동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번쯤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이 재구성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추모식에) 왔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최연제 씨도 "사람이 생긴 모양이나 지향하는 바에 따라 어느 집단에서 배제되고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각자 사는 모양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특정한 다름만 이렇게 차별적으로 대우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발길도 이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추모식에 참석해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을 들고 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정말 송구스럽다"며 대선후보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또 "오늘 이 자리에는 저 대신 국방부 장관이 와서 무릎을 꿇어야 하고, 참모총장이 와서 사과를 해야 했던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시된 변 하사의 전투복은 추모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품정리 과정에서 중고 의류수출업체로 넘어간 변 하사의 군복은 방콕 현지 교민이 발견해 변 하사 변호인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 한켠에는 전투복을 입은 변 하사의 판화가 찍힌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나로서 살고자 했던 그녀를 기억하며, 변희수 하사를 추모합니다 1998.5.17~2021.2.27'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날 추모문화제를 주관한 공대위는 변 하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도 이어간다. 현재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변 하사의 사망 시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변 하사의 의무복무 만료일(2월 28일) 이전으로 결론 난다면 변 하사의 순직 인정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추모제를 마친 뒤 기자와 만나 "변 하사가 남긴 과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더 깊이 더 넓게 고민해 봐야 때"라며 "현재 진행 중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도 협력하면서 향후 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