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1주기] “게임 못하는 나와 놀아준 희수, 너를 기억할게”

입력 2022-02-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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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변희수 1주기 추모식 열려
"안타까운 죽음, 더는 안 돼"
변 하사 친구 "희수는 20대 초반의 유쾌한 사람"
변호인 "당사자 없는 승소, 과연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콕에서 발견된 변하사 전투복, 교민 도움으로 돌아와

▲트렌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색과 하늘색이 물든 안개꽃이 고 변희수 하사 사진 앞에 쌓여있다. (유혜림 기자 wiseforest@)

27일 오후 2시 서울 신촌.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곱게 물든 안개꽃이 故 변희수 하사 사진 앞에 하나둘씩 쌓였다. 하늘과 분홍은 트렌스젠더를 상징한다. 이날 변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변 하사 1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들로 광장은 붐볐다. 부산에서 온 구슬 씨는 "그분(변 하사)에게 빚진 어제를 기억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서울에 왔다"며 "변 하사는 성소수자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배타적인 사회 구조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도 같은 성소수자로서 고마운 마음과 슬픈 마음이 같이 들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인 홍정선 씨는 "오늘이 변 하사의 1주기인데, 운명을 달리한 그 날 밤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그 밤을 함께 있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미안함을 느낀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이 나라에서 생기면 절대로 안 된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공대위는 이날 2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7일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변 하사 1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유혜림 기자 wiseforest@)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친구야"
변 하사의 친구부터 복직 소송을 도왔던 변호인단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추모 메시지를 띄웠다. 이날 참석하지 못한 변 하사 친구는 김겨울 트랜스해방전선 대표의 대독을 통해 "'친구 변희수'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게임을 잘 못 하는 저를 배려하며 게임을 같이 해 주고 가끔은 엉뚱한 이야기를 하며 맞장구 쳐주는 20대 초반의 유쾌한 사람"이라며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친구야"라고 남겼다.

변 하사의 변호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변 하사가 용기를 내서 걸어갔던 그 길에서 우리는 이 전역처분 사건을 승소했지만, 과연 당사자 없는 이 사건의 승소를 과연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애도했다. 이날 추모문화제 참석자들은 이선희의 '인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전투복 입은 변희수 하사의 모습이 담긴 판화. (유혜림 기자 wiseforest@)

◇"정치, 차별금지법 제정해야"

추모식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세정 씨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자들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사실 주요 대선주자들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동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번쯤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이 재구성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추모식에) 왔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최연제 씨도 "사람이 생긴 모양이나 지향하는 바에 따라 어느 집단에서 배제되고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각자 사는 모양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특정한 다름만 이렇게 차별적으로 대우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발길도 이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추모식에 참석해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을 들고 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정말 송구스럽다"며 대선후보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또 "오늘 이 자리에는 저 대신 국방부 장관이 와서 무릎을 꿇어야 하고, 참모총장이 와서 사과를 해야 했던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시된 변 하사의 전투복은 추모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품정리 과정에서 중고 의류수출업체로 넘어간 변 하사의 군복은 방콕 현지 교민이 발견해 변 하사 변호인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 한켠에는 전투복을 입은 변 하사의 판화가 찍힌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나로서 살고자 했던 그녀를 기억하며, 변희수 하사를 추모합니다 1998.5.17~2021.2.27'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변 하사 순직 위해 끝까지 함께 한다"
시민들은 추모장소에 마련된 게시판에 변 하사를 기억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주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변 하사의 용기를 잇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는 세상이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내일을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살아내겠습니다!' '더는 국가가 당신을 차별할 수 없도록 변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등이 있었다.

이날 추모문화제를 주관한 공대위는 변 하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도 이어간다. 현재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변 하사의 사망 시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변 하사의 의무복무 만료일(2월 28일) 이전으로 결론 난다면 변 하사의 순직 인정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추모제를 마친 뒤 기자와 만나 "변 하사가 남긴 과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더 깊이 더 넓게 고민해 봐야 때"라며 "현재 진행 중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도 협력하면서 향후 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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