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1970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윌리엄 마틴이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한 얘기다. 펀치볼은 파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과일주스에 술을 넣은 펀치를 담아두는 대형 음료 그릇이다. 중앙은행을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낮은 금리를 통해 경기를 띄우고 싶어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른다 싶으면 금리를 올려 흥을 깬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잡기에 나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인 재작년 3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내려 경기 하강 속도를 늦췄는데, 이제 금리를 정상화하는 단계인 셈이다.
전임 이주열 총재는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가 1.75∼2.00%로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에 무게를 실으며,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급등한 물가 역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를 기록했다. 2011년 이후 11년 만에 4%를 넘었다.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하지만, 고유가ㆍ고환율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친 복합 위기 속에 저성장이란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은 유가 상승 등 공급 측면이 크기 때문에 금리인상 같은 통화 정책 대응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금리를 무조건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가계 부채 문제도 통화정책 수립에 딜레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62조 원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불과 2년 사이 260조 원 넘게 늘어났다.
이처럼 민간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어 다중채무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와 한계 기업들이 '부실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 올해 미국은 긴축을 통해 코로나 사태로 풀어놓은 유동 자금을 공격적인 속도로 빨아들일 태세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가 취임 후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다. 특히 차기 정부 출범과 맞물려 한은이 위기관리에 각별히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흔들리는 성장률과 치솟는 소비자물가, 가계부채 문제 등을 제대로 진단하고, 이를 통화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의 조율도 필요하다. 통화정책과 재정 및 거시건전성정책이 엇박자 양상을 나타내면 정책 효과는 줄어든다. 물가를 낮추려고 금리를 올렸는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물가 상승 압력을 되레 높일 수는 식이다.
이창용 후보 역시 "최근 중앙은행들의 정책도 큰 틀에서 물가, 성장, 금융안정, 거시경제를 종합적으로 보고 정부정책과의 일치성, 일관성도 고려하며 서로 협조하는 가운데 물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까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이 긴 불황의 터널에 갇혔던 이유 중 하나는 냉탕과 온탕을 급하게 오간 일본은행의 헛발질 탓이었다. 현대 금융사회는 중앙은행이 국내외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통화정책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쉽게 요동치게 된다. 이창용 후보가 성공한 한은 총재로 남아야 하는 이유다.
이주열 전 총재는 퇴임사에서 "성장을 지키면서도 금융안정과 함께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창용 후보에게 그 묘책을 담은 비단 주머니 하나쯤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