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옛 현대상선)이 최근 신임 CEO로 김경배 사장을 선임했다. 김 사장은 2020년까지 현대차그룹의 물류계열사인 글로비스 대표를 역임했던, 재계에선 '물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HMM은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에서 9년여 대표이사를 역임한 물류전문가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그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CEO 인사는 여러 후보군 가운데 한 명을 발탁하는 검증 인사를 거쳤다. 경영진추천위원회가 복수의 CEO 후보자를 검증했고 면접도 치렀다. 위원회는 고심을 반복한 끝에 지난 9일 신임 CEO 후보로 김경배 사장을 확정했다.
추천위는 “신임 CEO 선임 과정에서는 HMM의 향후 성장과 경영혁신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글로벌 역량, 전문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라며 “평판 조회 및 면접 등을 통해 최적의 CEO 선임을 위한 인선 과정을 진행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HMM은 오는 29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김경배 사장을 사내이사로 임명한다. 김 사장은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김경배 사장은 '물류 전문가' 이외에 다양한 수식어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CFO(재무전문가)와 비서실장,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를 일컬어 “직업이 사장이다”라고 말할 만큼 주요 기업의 사장을 두루 거쳤다. 그만큼 "리더십이 탁월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누가 뭐래도 그에게 있어서 친정은 현대차그룹이다.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치는 것은 물론, 총수를 가까이서 보필한 ‘왕의 남자’이기도 하다.
1964년생인 그는 성남서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거쳐 1990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 입사한다.
이후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 비서실 수행비서로 근무했다. 정 명예회장의 사진 뒤쪽 어딘가에 한 번쯤 얼굴이 엿보일 만도 했으나 그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총수와 가까운 거리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그림자 보필을 이어갔던 셈이다. 이 때문에 정 명예회장의 신임 역시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이 타계한 이후에는 정몽구 회장을 따라 현대차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미국법인 재무책임자(CFO)를 시작으로 현대글로비스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의 미국법인에서 근무했다. 2대 정몽구 명예회장 역시 이 무렵 그의 성과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친정인 현대모비스로 복귀하면서 기획실장을 거쳐 인사총무실장(이사급)까지 올랐다. 본격적으로 '왕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한 때는 2007년. 정몽구 회장의 비서실장(상무)으로 발탁된 때다. 2대에 걸쳐 총수를 보필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후 현대차그룹 글로벌전략실장(전무)을 거쳐 2009년에는 마침내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부사장)에 올랐다.
2018년 현대위아 대표이사(사장)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무려 9년 동안 이곳에서 대표이사를 유지했다. 신상필벌이 뚜렷한 현대차그룹에서 이례적인 경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글로비스의 대표이사를 10년 가까이 지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대에 걸친 그룹 총수의 두터운 신임을 방증하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현대위아 시절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이른바 ‘갓경배’로 통했다. ‘신(God)’를 뜻하는 영어단어와 그의 이름을 덧붙인 대명사였다. 그만큼 조직 내에서 그의 역할론과 당위성이 컸다.
임원들에게 호통과 거침없는 쓴소리를 이어가면서도, 직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였던 CEO로 남아있다.
경영에 대한 평가도 후했다. 그가 현대위아로 자리를 옮겼던 2018년은 현대위아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이었다. 2017년 중국의 무역보복이 본격화됐을 때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극적인 실적 반전보다 (현대)위아를 위기의 정점에서 구해내는 데 역할이 적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총수에서 시작한 변화를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정착시키는 역량도 인정받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무렵 근무 복장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의 조직문화가 새로운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다른 계열사들이 양재동 본사(현대차)의 눈치를 볼 때도 현대위아는 주저함이 없었다"라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조직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런 변화 역시 김경배 사장의 추진력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