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대러 추가 제재 박차
이성 잃은 푸틴, 제재도 비난도 개의치 않아
러와 직접 충돌 피하려는 서방의 한계도 인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전쟁 종식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평화협상도 불씨를 되살리기 힘들어졌다. 러시아가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퇴각한 부차 지역에서 410구의 민간인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CNN은 대규모 무덤을 발견했고 지하실에서 시신이 옮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해당 시신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키이우, 체르니히우, 수미에서 80년 전 나치 점령 기간에도 목격하지 못했던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민간인 집단학살로 평화협상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야만적인 전쟁 범죄는 서방사회의 추가 대러 제재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의회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속도를 낼 것을 촉구했다. 유럽연합(EU)는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제재 검토에 들어갔다.
비난 수위도 높아졌다. 푸틴을 전범이라 불렀다가 논란을 자초한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내가 푸틴을 전범이라고 비난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라며 “전범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와 비난이 푸틴의 야만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끔찍한 비극은 서방이 러시아와 푸틴을 고립시키려 한 전략이 억지력 측면에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푸틴은 서방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는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길 꺼려한다는 걸 안다.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군사조치 가능성이 제로인 상황에서 어떤 제재도, 비난도 사실상 푸틴의 광기를 잠재우지 못하는 셈이다.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책임을 묻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2차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심판했던 ‘뉘른베르크 재판’과 유사한 절차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전 이후 확립된 글로벌 시스템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회부가 필요한 모든 절차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부할 것이다. 중국 역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무슬림 탄압을 고려, 인권 침해에 책임을 부과하는 모든 노력을 무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중국의 무슬림 탄압을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러시아의 잔혹함에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지만 서방의 추가 제재 카드로 푸틴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