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ㆍ커피ㆍ치킨 등 먹거리 줄줄이 인상에 실효성 '도마'…'MB물가' 실패 기시감 우려
외식가격공표제가 시행된 지 두 달을 맞았습니다. 치킨, 죽, 김밥, 햄버거 등 일상 먹거리 12개를 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이를 취급하는 62개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가격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홈페이지에 가격을 매주 공표하는 제도인데요. 과도한 가격 인상을 막고 물가를 관리한다는 취지는 좋아 보입니다만, 바라는대로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됐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당장 제너시스BBQ가 결국 치킨 가격 인상을 현실화하며 4개월 만에 '고통 분담' 발언을 철회했습니다. 전 품목이 2000원씩 오르면서 교촌치킨, bhc치킨과 함께 사실상 치킨 3사가 모두 가격 인상을 현실화하고 만 거죠. 피자는 또 어떻습니까. 지난달부터 한국파파존스는 가격이 6.7%, 미스터피자는 피자 단품 전 제품이 2000원씩 비싸졌습니다. 전부 외식가격공표제가 시행된 이후의 일입니다.
관리품목에 해당하진 않지만, 외식물가로 잡히는 커피도 줄줄이 오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원두 가격 상승에 따라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등 주요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에서 시작된 커피 가격 인상은 저가 커피 등 전 커피 업계로 옮겨붙고 있죠. 앞서 빽다방을 필두로 컴포즈는 물론 CU의 컵 커피, 이마트24의 PB 원두커피 브랜드 '이프레쏘' 커피까지 오르며 '편의점 컵 커피 1000원' 시대도 저물고 있습니다.
외식가격공표제는 시작부터 잡음이 많았습니다. 이른바 과거 'MB물가'의 향기가 진하게 났기 때문이죠. MB물가는 과거 이명박 정부시절 엥겔지수 등을 비롯해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배추, 무, 파, 심지어 라면까지 52개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열흘마다 가격을 일일이 공표하던 이른바 '관 주도' 물가 관리 시스템이었습니다. 결과는 실패작으로 판명났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당시는 저금리, 고유가 등 여파로 유례없는 대표적인 고물가 시대로 기록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MB물가의 흑역사는 따로 있습니다. 주요 라면 업체를 대상으로 벌인 담합 조사인데요. 당시 농심이 1600원 상당의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을 내놓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감히 라면 주제에' 너무 비싸다는 소비자 저항이 매우 심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활극(?)이 제법 자유로울 수 있던 배경이죠. 신라면블랙은 결국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해외에서 먼저 성공하고 나서야 금의환향해 국내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담합 건은 9년여의 세월 간 소송 끝에 2019년 라면 업체의 완전 승리로 마무리됐고요.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최근 공정위는 하림, 마니커 등을 비롯한 닭고기 업체가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약 17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치킨은 대표적인 외식 먹거리인 데다, 가격공표제 대상 품목이기도 합니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치킨 3만 원 시대'를 언급하며 소비자 여론도 흉흉한 상황이죠. 도·육계협회, 플랫폼 배달업체,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 등 산업에 얽힌 이해관계자는 많지만, 이중 한 단체만 콕 집어 과징금 부과를 앞세운 '정치 담합'을 내놓기 나쁘지 않은 분위기인 셈인 겁니다.
물론 가격담합이 없어져 시장경제의 틀이 바로 세워지고 물가가 잡힌다면 소비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리면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했더라면 소비자들은 신라면블랙을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었을 뻔했던 것처럼요.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인 거죠.
다시 2022년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이미 외식가격은 배달 플랫폼 등을 통해 모바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글로벌 물류대란에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등 고려해야 할 수많은 거시적 변수는 기업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외식가격공표제의 신 흑역사'에 대한 걱정이 저만의 기우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