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책 ‘파친코’ 재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민진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인 요청을 받으면 원래 ‘We are the family’라고 썼다. 그 이유는 우리가 혈연관계로 이뤄진 가족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파친코’를 재출간한 후에는 ‘Powerful family’라고 쓴다. 내 책을 읽고 사인을 받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파워풀한 사람으로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쓰고 있다”며 “우리가 파워풀하고,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땐 해내지 못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민진의 말처럼 ‘파친코’를 관통하는 단어는 ‘힘’과 ‘연결성’이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에서는 연결성을,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문장에선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재미교포 1.5세대인 이민진이 30년에 달하는 세월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이 책은 사회와 역사로부터 외면당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디아스포라(Diaspora :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파친코’는 작년에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미나리’와 맥이 닿아있다. ‘미나리’ 역시 미국 아칸소로 떠난 한국 가족의 분투기를 그린 디아스포라 영화다.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미나리’는 ‘파친코’의 주제와 맞닿은 부분이 많다.
이처럼 미국 주류 사회에서 디아스포라 콘텐츠를 포함해 한국 문학, 영화, 드라마에 관심을 두는 이유에 대해 이민진은 ‘한류의 붐’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창작자가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계시고, 그 열정과 희생이 한류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도 한류에 동참하고, 이 모든 게 같이 어우러져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파친코’는 지난 4월 판권 계약이 종료되며 절판됐다가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특히 이번 개정판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원작에 충실한 번역과 구성’이다. 이민진은 “‘파친코’는 내가 평생에 걸쳐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이 영어가 아닌 언어로 번역될 때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어떻게 번역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플루엔셜이라는 출판사를 선택한 이유는 번역에 대해서 내가 통제할 수 있게 허가해줬다. 번역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며 “가령 과거 버전에서는 매 챕터마다 제목이 추가됐는데 새로운 버전에선 그런 게 없어졌다. 원작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런 의도를 살려준 출판사와 번역가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현재 이민진은 한국인들의 교육열에 관한 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집필 중이다. 그는 데뷔작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파친코’에 이어 ‘아메리칸 학원’을 묶어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라고 밝히며 한국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이민진은 이번 방한 기간 동안 한국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갖는다. 9일에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사인회를, 10일에는 세종대 대양홀에서 북토크를 개최한다. ‘파친코’ 2권은 오는 25일 출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