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나흘간의 꿀맛 같은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제각기 할 일들 어느 정도 해 뒀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그저 편안한 옷차림으로 가까운 극장에 나서 요즘 재밌다더라는 영화로 머리 좀 식혀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법.
혼자든, 함께든 상관없다.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고소한 팝콘, 나초까지 양손에 집어 들면 그 순간만큼은 더 부러울 것도 없을 테니! 딱 그 정도의 ‘소확행’을 기대하는 당신에게, 기대 이상으로 시간을 ’순삭’해줄 만한 극장 추천작을 엄선해 소개한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귀찮은 당신을 위한 OTT 추천작도 있으니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보시길.
올 추석, 모두가 이 영화를 주목하고 있다. 연휴에 개봉하는 유일한 한국 텐트폴 영화다. 유해진, 현빈이 남북 형사로 출연해 합동 수사를 펼쳤던 2017년 흥행작 ‘공조’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이다. 재회한 강진태(유해진)와 림철영(현빈) 사이로 FBI요원 잭(다니엘 헤니)이 등장하고, 세 사람은 마약조직 우두머리 장명선(진선규)을 잡기 위한 공동의 목표로 달려간다. 물론 비밀리에 감춰둔 각자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미묘한 경쟁에도 불이 붙는다. 넋 놓고 편안하게 보기 딱 좋은 정도의 액션과 불편감이라고는 1도 없는 자연스러운 유머로 남녀노소 누가 봐도 무난하게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푼수력’을 장착하고 돌아온 박민영(윤아)이 잘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벌이는 사랑스러운 설레발 역시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 듯.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연출한 이석훈 감독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았다.
류승완 감독의 수작으로 손꼽을 만한 ‘모가디슈’가 재개봉한다.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했던 지난해 7월 개봉했음에도 4개월 동안 차곡차곡 관객을 불러 모아 360만 명을 돌파하는 뚝심을 보여준 작품이다. 업계에서 시기적 어려움이 못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만듦새에 대한 호평이 일었던 덕인지, 이번 연휴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내전이 벌어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안전하게 탈출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지닌 남한 대사관 사람들(김윤석, 조인성)과 북한 대사관 사람들(허준호, 구교환)이 주축이 돼 벌이는 생존 드라마로 심리적 긴장감이 일품이다. ‘짝패’, ‘베를린’, ‘군함도’로 검증된 류승완 감독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설계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나, 훈련받은 사람이야”를 읊조리는 허세 가득한 남한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의 능구렁이 같은 연기가 여느 때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가운데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등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 이렇게 흥행할 줄 알았을까. 제작비 50억 원 규모의 중소 영화가 성공하기 결코 쉽지 않은 국내 영화계의 치열한 경쟁 상황을 생각하면, 오로지 관객 입소문의 힘으로 개봉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긴 이 작품의 저력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는 상황. ‘육사오’는 로또에 당첨된 한국 병사(고경표)가 바람을 타고 북한 땅으로 날아간 로또 용지를 찾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북한 병사(이이경)와 만나며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을 다룬다. 무려 57억 원에 달하는 당첨금액을 찾아 나누자는 남북 병사들 간의 ‘대승적인 합작’이 시작되고, 상호 신뢰를 위해 양쪽의 군인을 한 명씩 볼모로 바꿔치기하는데... 분단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개성 있는 작품이다. 경쾌한 웃음을 위한 과감한 설정, 젊은 관객의 입맛과 감각을 사로잡는 맛깔나는 대사, 은근히 탄탄한 코믹 연기로 크고 작은 웃음을 주도하는 배우들의 호연 등 강점이 맞물려 관객의 호평을 끌어내는 중이다. 추석 연휴 동안 얼마만큼의 뒷심이 붙을지 무척 주목된다. 박규태 감독이 연출했다.
잘 빠진 상업 영화만큼이나 개성 있는 독립영화 한 편이 주는 힘이 크다는 걸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번 연휴 동안 ‘성적표의 김민영’을 관람 예정 목록에서 빼놓지 말길. 청주여자고등학교 시절 ‘삼행시 클럽’을 운영하며 자기들만의 독특한 우정 세계를 쌓아온 3인방은 졸업 이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며 점차 서먹해지는 감정과 마주한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삼행시 짓기, 비 오는 날 수경 쓰고 자전거 타기, 햇반으로 경단 만들기 등 여느 성장영화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 영화를 가득 채우며 주인공들의 특별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랬던 시간을 까맣게 잊은 듯, 모처럼 만난 자신을 서운하게 만드는 친구 민영(윤아정)에게 못내 마음 상한 정희(김주아)는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친구 성적표’를 건네는데… 우정이라는 잊고 있던 감정의 오묘한 빛깔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클라이맥스다.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재은, 임지선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외화 상영작도 빼놓을 수 없다. ‘블랙폰’은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된 소년이 죽은 친구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죽음의 사투를 다루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스콧 데릭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장르적 특색을 한층 끌어올렸다. 잔잔한 드라마를 선호한다면 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드라마 ‘블레이즈’는 어떨까. 전설적인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블레이즈가 따뜻한 영혼을 지닌 여인 시빌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재즈 공연 실황 ’한여름밤의 재즈’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셀로니어스 몽크 등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의 연주를 극장 사운드로 즐길 수 있다. 소피 마르소라는 이름의 위력이 여전한 관객층이라면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드라마 ‘다 잘 된 거야’도 관람 후보군에 올려두길. 존엄사를 택한 아버지와 그의 마지막을 돌보는 딸의 애틋한 작별 여정을 다룬다.
극장에만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이제 모두들 잘 알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놓쳐서는 안 되는 OTT 플랫폼 주목작도 함께 소개한다. 가장 주목받는 건 윤종빈 감독의 6부작 언더커버 범죄물 ‘수리남’이다. 홍어 사업을 위해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으로 떠난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하정우)가 목사로 둔갑한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을 만나 예상치 못한 수렁에 빠지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쿠팡플레이는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을 단독 공개한다. 극장 상영 이후 IPTV를 거치기도 전에 OTT플랫폼에서 독점 공개되는 만큼, 그 만듦새가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놓치기 아쉬운 기회다. 웨이브는 국립극장의 공연 실황 13편을 공개한다. 국립창극단 ‘춘향’, 국립무용단 ‘홀춤Ⅱ’ 등이 공개되며 ‘함께, 봄’, ‘소리극 옥이’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자막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