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 정치경제부 정치팀장
그런데 여당이 지금의 모습으로 선거에 나선다면 결과가 어떨까. 짐작건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해체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있지 않나 싶다. 바닥을 기는 국정 지지율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을 것 같고, 내부총질이나 하던 어린 전 대표 하나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여당에 불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윤석열 신당’은 낯선 단어도 아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등장했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이 표출될 때면 어김없이 ‘정계 개편’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딴 살림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윤석열표 신당은 아직 새 간판을 내걸지 않았을 뿐 사실상 물밑 작업은 마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당의 밑그림은 국민의힘 내분 사태에 시선이 쏠린 틈에 조용히 진용을 갖춰온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김한길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통합위는 기획 분과, 정치·지역 분과, 경제·계층 분과, 사회·문화 분과 등 4개 분과에 32명의 위원을 영입하는 작업을 이미 마쳤다. 아직 부위원장과 지역협의회 등이 공석으로 남았지만 골격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한길 위원장의 과거 행보를 들어 신당의 산파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지지율이다. 30%대에 힘겹게 턱걸이 중인 대통령의 지지율로는 신당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니 아마 이런 계산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전 대표를 제거하고 국민의힘 내분을 깔끔히 정리하면 리더십이 회복될 테니 그때 창당한다는 계획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국민의힘 내분 사태가 누구 책임이냐를 묻는 흔한 조사와 달리 국민의힘이 쪼개지면 어느 쪽을 지지하겠느냐는 내용이다.
미디어토마토가 8월 초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국민의힘과 신당 중 어느 당을 지지하겠느냐’는 물음에 42.5%가 ‘신당’을 택했다. ‘국민의힘’을 꼽은 사람은 29.8%에 그쳤다. 아예 ‘다른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도 18.1%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 체제를 끝내고 비대위로 전환한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52.3%가 ‘잘못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대답은 31.5%뿐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럼 이준석 전 대표가 얼른 나가서 딴살림 차리면 되겠네? 이준석 신당은 윤석열 신당보다 더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 대표에게는 우선 사람이 없다. 유승민 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 등이 그와 함께할 수 있겠지만 현역 의원 중 이 전 대표를 따라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자칫 국회의원 없는 원외정당으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여론전에 능하고 이슈 선점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국회 밖으로 밀려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 전 대표는 돈도 없다.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려면 막대한 선거비용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구 한 곳에 출마하는 무소속 개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당을 만들었다가 쓴맛을 본 경험도 있으니 이 전 대표가 섣불리 국민의힘을 뛰쳐나갈 가능성은 더욱 낮다.
버티기에 들어간 이 전 대표도 고민이 클 것이다. 당장 윤리위원회가 탈당 권고나 제명 등으로 사실상 당적을 박탈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처분 등으로 맞설 수는 있지만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만에 하나 국민의힘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긴다면 이 전 대표에게 남겨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분수령은 곧 다가온다. 16일엔 이 전 대표가 경찰에 출석할 예정이고 28일엔 윤리위가 열린다. 이 싸움에서 지는 쪽은 창당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먼저 인내심이 바닥나는 쪽이 당에서 나가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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