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Maria Ressa)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극우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아닌 비자유주의적 리더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일삼는 거짓에 저항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며 “사실이 없으면 진실이 없고, 진실이 없으면 신뢰가 없다. 신뢰가 없으면 협업할 수 없다. 협업할 수 없으면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등 실존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사실을 찾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필리핀의 온라인 뉴스 매체 래플러의 CEO로 재직 중인 레사는 필리핀 독재 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언론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독일의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86년 만이다.
이 외에도 레사는 두테르테 정권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의 윤리적 역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래플러 설립 전 CNN 동남아시아 담당으로 테러 조직들에 관한 탐사 보도를 했으며 그 후 필리핀 ABS-CBN의 뉴스부장을 맡았다. 그는 2018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과 2019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 특강에서 레사는 ‘새로운 시대의 저널리즘과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레사는 소셜네트웍크서비스(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 “좋은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저널리즘은 사실과 진실 그리고 신뢰를 바탕에 둔 저널리즘이다.
레사는 “가짜 뉴스에는 차별, 분노, 혐오, 배제 등이 깔려 있다. 돈과 권력으로 인해 진실이 거짓이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현재 언론 생태계를 진단했다. 이런 정보 공작을 타파하기 위해서 그는 좋은 저널리즘에 기반한 커뮤니티 구축을 해결 방안으로 꼽았다. 레사는 “좋은 저널리즘을 통해 행동을 위한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저널리즘 교육이, 중단기적으로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 규제 법안을 마련해 무분별하게 증폭하는 가짜 뉴스를 제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레사는 프리랜서 기자와 독립 탐사 보도 매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하면, 언론사는 당연히 그 기업의 문제점이나 우려 사항을 제대로 보도할 수 없다. 즉 기자가 언론사를 소유하지 않는 한 보도나 편집의 최종 권한은 없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리랜서 기자와 독립 탐사 보도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이들이 저널리즘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한 토양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