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부터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제공한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지촌’ 운영이 정부가 주도했다는 것을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29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기지촌 위안부 출신 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초 120명이 소를 제기했으나 2심 단계에서 117명, 상고심 선고에서 95명이 남았다.
정부는 1950년부터 미군 위안시설을 지정하고 위안부를 집결시켜 이들에 대한 성병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등 기지촌 형성과 운영에 관여해 왔다. 기지촌 여성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 등 교육을 실시하고 기지촌 여성들을 애국자로 지칭하며 노후보장 등 혜택을 약속하기도 했다.
기지촌 환경 개선사업은 1980년대 이후까지도 시행됐고, 미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서비스 개선 등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문을 시달하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격리수용치료에 국한해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만 위자료를 인정했다. 원고 57명에 각 500만 원씩 2억8500만 원 배상을 지시했다.
2심은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및 성매매 정당화‧조장을 폭넓게 인정해 원고들 모두에 대해 위자료를 인정하고 격리수용치료와 관련된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는 위자료를 증액했다. 인용 원고는 117명 모두로 총 6억4700만 원을 인용했다.
대법원은 “피고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구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의무 등 마땅히 준수돼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해 위법하다”며 “원고들은 피고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인격권 내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피고 측에서 장기소멸시효(불법행위일로부터 5년)이 완성돼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장기 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되고 단기 소멸시효만 적용된다”고 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미군 기지촌을 조정‧관리‧운영하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 조장한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한 것으로 위법한 행위임을 확인했다”며 “이같은 행위가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해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선언한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