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유서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30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강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라며 “원심은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해 원고들 청구를 배척하였으므로 파기한다”고 판단했다.
강 씨는 1991년 5월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씨의 친구였다. 김 씨가 정권 퇴진 운동을 하다가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을 때,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 등)로 기소돼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강 씨는 1994년 8월 형기만료로 출소했다. 하지만 13년 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유서대필 사건’을 10대 의혹 사건으로 선정해 조사했고, 2007년 11월에 강 씨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강 씨는 유죄확정판결 중 자살방조의 점에 관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개시 결정을 한 이후 2014년 2월 자살방조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듬해 검사의 상고가 기각돼 위 재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강 씨는 국가와 당시 수사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위법한 필적감정으로 인한 국가 및 감정인 상대 청구를 일부 인용하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심 역시 위법한 필적 감정으로 인한 국가 상대 청구 일부 인용하고 강 씨 등 일부 원고에 대한 위자료를 증액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날 대법원은 “이 판결은 유서대필 사건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해당하므로 그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개별 위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청구에 관하여는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기존 원심에서 위법한 감정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긍정한 것에서 더 나아가 파기환송 후 수사과정의 개별 위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유무가 다시 심리・판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