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주유소, 하이패스를 이용하지 않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급할 땐 종종 셀프주유소를 이용하지만, 선택지가 있다면 늘 유인주유소로 향한다. 하이패스 단말기는 설치한 적이 없다.
사소하지만 내겐 중요한 삶의 원칙 중 하나다.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는 일자리를 줄이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둘째는 셀프주유소와 하이패스를 이용할 필요를 못 느껴서이다. 같은 맥락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갈 때도 되도록 접객원이 고용된 곳을 찾는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도 여럿 봤다. ‘마음대로 소비자 선택권을 줄이는 게 괘씸해서’, ‘무인 시스템이 불편해서’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고자 한다는 점은 같았다.
무인 업소를 이용하지 않는 다른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다.
키오스크 도입 등 무인화로 서비스 공급자인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고 그만큼 가격을 인하했다면 수요가 늘어 매출도 증가했을 거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은 제조·공급원가와 관계없이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가격을 내린다고 매출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이런 불안감은 저물가·불경기에도 서비스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기만 하는 경로의존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가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상회복에 따른 수요 회복에도 키오스크 도입 등 무인화가 가속화하면서 지난해 4월 음식점·주점업 취업자는 전년 동기보다 0.7% 줄었다. 반면, 외식 물가는 같은 기간 6.6% 급등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익숙지 않은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서비스 이용이 불편해졌는데, 기존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자영업자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다. 그나마 비싸진 서비스가 ‘돈값’을 한다면 줄어든 수요만큼 새 수요가 생기겠지만, 서비스의 질이 낮아진다면 새 수요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필자도 접객원 없는 라멘집에서 그저 그런 라멘 두 그릇에 곁가지 메뉴 한 접시 값으로 4만 원을 지출한 뒤 ‘당분간 외식을 끊겠노라’ 다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잠재적인 수요자 감소다. 기계에 밀린 취업자는 대다수가 저소득층이다. 또 단순 접객·계산이 아니라면 민간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이들은 특히 한계소비 성향이 크다. 버는 만큼 쓴다는 의미다. 주된 소비품은 생필품, 식료품 등이다. 대부분 지역 내에서 소비활동을 한다. 결국, 무인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지역 내 핵심 수요자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지역 내 소비의 총량도 줄어들게 됨을 뜻한다.
사실 물가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는 답이 없다. 정부에서 ‘비용을 줄였으니 가격을 내리라’고 강요할 수도, 또 ‘가격을 내리면 매출을 늘려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무인화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라면 문제 없겠지만, 도시 규모가 작다면 지역 내에서 서비스업 일자리가 갖는 의미가 크다.
먼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업은 제조원가가 곧 경쟁력이다. 기계·장비 혁신으로 단기적으로 고용이 줄더라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이 늘면, 그 결과로 생산이 늘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반면, 서비스업은 주된 시장이 지역이다. 고용이 줄면 지역 내 총수요가 줄어 매출 감소로, 추가적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물가 인하가 불가능하다면, 고용 창출로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총수요를 늘리는 게 서비스업의 유일한 살길이다.
대책도 이런 차이를 바탕으로 고민해야 한다. 서비스업, 좁게는 자영업자들의 수익성 악화에는 임차료 인하 임대인에 대한 세제혜택, 식자재·가공식품 유통구조 단순화, 업종 전환 지원 등 고용 충격이 없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세제·재정지원은 ‘고용을 늘리는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이 무인 계산·접객용 기계를 도입해 일자리를 줄이는 게 혁신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