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브라질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중남미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와 인구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동시에 공격받은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1964년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던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1985년 회복된 이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다.
더 큰 문제는 전임 대통령이 이번 폭동을 사실상 조장했다는 데 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폭력시위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재빨리 폭동 세력과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대선 방식에 대한 근거 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선거 결과에 불복할 수 있다는 뜻을 끊임없이 내비쳤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대통령 재임 기간 가짜 뉴스를 토대로 전자투표의 신뢰성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고, 본인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이는 표를 도둑맞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회와 사법부를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수단’을 동원해 공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했다. 그는 대선에서 패배한 뒤에는 지지자의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발언은 자제했지만,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강경 지지자의 폭동을 사실상 방조한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브라질에서 들려온 이 불행한 소식은 자연스레 2021년 1월 발생한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건 말이다. 폭동으로 사망자까지 발생했고, 민주주의 진영의 맏형 격인 미국의 위상은 추락했다. 사건의 배경을 18개월간 조사한 미 하원 특별위원회는 2022년 12월 법무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우수성을 설파하던 미국의 대통령이 폭동을 선동한 꼴이 됐다.
미국과 브라질에서 일어난 두 닮은꼴의 사건의 배경에는 포퓰리즘이 있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재임 기간 지지층 동원을 위해 사회가 ‘선한 국민’과 ‘악한 국민’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간주하는 포퓰리스트 세계관을 활용했다. 자신의 지지자는 ‘선한 국민’으로 칭했고, 기존 정치체제의 엘리트나 정권의 통치 이념에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악한 국민’의 프레임을 씌웠다. 포퓰리스트에게 정치란 이 두 개의 집단 중 ‘선한 국민’인 ‘우리 편’의 의지만을 표현하는 행위다. 띠리사 포퓰리스트 정치는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구도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구도에서 ‘우리 편’이 도덕적 우월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한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포퓰리스트 세계관에 극우 이데올로기를 결합해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냈다. 보우소나루는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이어졌던 군사독재를 여러 차례 옹호한 바 있으며, “사람들이 민주주의에서 살지 독재에서 살지를 결정하는 것은 군대”라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견해에 기반을 둔 소수자 공격 사례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중남미 출신 이민자를 비하하고 흑인 유권자를 공개적으로 헐뜯음과 동시에 백인 유권자의 ‘우수성’을 칭송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이들은 ‘우리 편’의 결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했다.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극심하게 분열된 국가가 남았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편을 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편만을 위하는 통치를 하니 정치 양극화가 가중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회에 자리 잡았던 지성주의 역시 포퓰리즘에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지지세력은 언제나 옳고 반대세력은 언제나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근거 없는 사실을 우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 세력의 억지 주장은 가짜 뉴스에 의해 강화됐고 가짜 뉴스 바이러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져나갔다.
브라질의 정치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퓰리즘의 유혹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3선의 룰라 대통령이 근시안적 관점으로 포퓰리즘에 포퓰리즘으로 대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