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들이 보증금 지키기 총력전에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 속칭 ‘빌라왕’ 전세사기 등 집값 하락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최근 전세권설정과 확정일자 부여 등 법적 안전장치를 찾는 세입자가 늘어난 것이다.
25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2022년 12월) 기준 서울지역 전세 확정일자 부여 건수는 총 2만793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7월 2만6598건보다 5%(1337건) 늘어난 수치다.
전세권설정 건수도 연말 부쩍 늘었다. 지난달 전세권설정 건수는 7월과 비교하면 소폭 줄었지만, 하반기 전체를 놓고 보면 감소 후 상승 추세를 보였다. 서울 기준 전세권설정 건수는 지난달 804건으로 7월(841건)보다 4.3%(37건) 줄었다. 하지만 최근 3개월 기준으로는 10월 604건에서 11월 648건에 이어 지난달 804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보호를 위한 확정일자 부여와 전세권설정 건수는 늘어났지만, 이 기간 서울 전세 거래량은 줄곧 감소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달 전세 거래량은 8463건으로 지난해 7월 아파트 전세 거래량(1만1658건)과 비교하면 27.4%(3195건)나 줄었다. 단독‧다가구와 빌라(연립‧다세대), 오피스텔 등 다른 유형의 주택도 모두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전세 거래량이 줄곧 줄었다.
즉 거래량을 감안하면 확정일자 부여와 전세권설정 건수 비율은 더 큰폭으로 늘어난 셈이다. 전세사기 사건이 부각되면서 법적 안전 장치를 찾는 발길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회초년생 등 전세 주거비율이 높은 2030세대가 권리 보호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40세 미만 확정일자(전‧월세) 부여 건수는 총 2만9625건으로 전체의 56.6%를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 7월 40세 미만의 부여 건수는 2만6221건, 비율은 43.7%에 그쳤다.
실제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최근 확정일자와 전세권등기 설정 문의가 줄을 잇는다. 한 세입자는 “전세 만기를 두 달 정도 앞뒀는데 전입신고는 계약 당일 했지만, 확정일자를 받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집주인이라고 밝힌 또 다른 글쓴이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 후 일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전세권을 설정해달라고 한다. 세입자의 걱정은 알겠지만 당황스럽다”고 했다.
강서구 마곡동 D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다주택자가 오피스텔을 주택으로 등록하지 않고, 세금 부담을 피하려고 계약 조건에 ‘전입신고 안 됨’을 넣는 매물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보증보험에 중소기업청 전세대출, 버팀목 대출 등 세입자가 원하는 것 다 맞춰줘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든 판이라 저런(전입신고 안 됨) 물건은 등록도 안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계약 단계부터 전세보증금을 보호할 제도 마련은 제자리걸음이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부여를 의무화한 ‘임대차 신고제’는 오는 5월 말까지 제도 시행이 유예됐다.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된 정책인 만큼 추가 유예나 수정 가능성이 크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전세 시장은 지난해보다 아파트 입주량 5만 가구 증가, 전세대출 이자 부담, 매매 물건의 전세 전환 등이 겹쳐 가격 하향 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며 “전세 보증금 보호를 위한 관련 법적 안전장치를 찾는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동시에 집주인에 대한 세입자의 입김도 세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