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권고에도 ‘일반사망’ 처리…인권위 재심사 권고
‘성전환자 군복무 연구용역’ 결과 ‘비공개’ 잠정결론
국방부가 15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수행한 ‘성전환자 군 복무 연구용역’을 비공개하기로 잠정 결론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재판부가 고(故)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 전역이 부당하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성소수자의 군 복무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조치다.
순직 권고에도 변 하사의 죽음을 ‘일반 사망’으로 처리한 군이 이번 연구도 비공개로 부치려고 하자 ‘변희수 지우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군 당국이 성소수자 군인 정책에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 만큼, 보고서를 토대로 정책 토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2021년 12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발주한 ‘성전환자 연구 용역’을 지난해 말 종료하고, 이날 최종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사업 기간은 1년으로 진행됐으며 지난해 12월 연구 종료 후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2개월이 걸렸다.
이번 보고서에는 성전환자의 현역복무와 관련된 △법적·제도적 문제 검토 △병영문화 측면에서의 문제 분석 △복무 제한 또는 인정 요건과 절차에 대한 검토 등이 담겼다. 이를 위해 KIDA는 외국군 사례 자료 수집을 위해 이스라엘 등 해외 출장도 다녀왔으며 장병 및 국민 대상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이번 연구 과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최종보고서를 비공개하기로 잠정 결론 낸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방부 장·차관도 지난달 이번 연구의 결론과 정책 제언 등을 보고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대변인실도 7일 ‘성전환자 군 복무 용역’ 공개 여부를 묻는 본지 질의에 “종합적인 검토 결과 비공개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비공개를 결정한 이유를 추가로 묻자 다음날(8일) “보고서가 완성되는 2월 말까지 비공개로 처리되며 향후 보고서 완성 시 공개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검토 여지를 남겼다. 연구단은 최종보고서에 ‘현행 유지·부분적 추진·적극 검토’와 같은 세 가지 안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세부 과제를 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이 ‘변희수 지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는 변 하사에게 내린 전역 조치를 비롯해 기존 법령과 규정을 모두 재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변 하사 사망 이후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국정감사, 국방위 현안질의 등을 통해 ‘군 인권에 안일했다’는 국회와 여론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 장관은 그때마다 “현재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라는 입장으로 즉답을 피했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성과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군 입장에선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시점 역시 부담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끝날 줄 알았던 변 하사의 순직 심사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앞서 변 하사 사망 사건 직권조사에 나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군의 부당한 전역처분이 사망의 주된 원인이었다고 보고 ‘순직’ 심사를 권고했지만, 육군은 이를 거부하고 ‘일반사망(비순직)’으로 처리했다. 인권단체와 정치권의 비판이 이어지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군에 ‘순직 재심사’를 권고하기로 의결한 상태다.
군이 이번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밀실이 아닌 정책 공론장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국방위는 이달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살펴볼 방침이다. 야당 간사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구 계획 수립 단계부터 군 동향을 주시한 만큼, 연구 결과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국방위원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연구는 창군 이래 최초로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성소수자의 군복무라는 매우 중요한 인권적 의제를 다룬 것이다. 연구 결과 역시 군의 것이 아니라 장병들과 국민들의 문제”이라며 국회 차원의 논의를 예고했다.
한편, 국방부는 ‘연구 결과에 따른 제도 정비 계획 여부’ 등을 묻는 질의엔 “연구가 종료되면 해당 결과를 바탕으로 지침 정비 여부 등을 판단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