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리먼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닌지, 몽땅 털어 주식을 샀는데 폭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가 지나친 걱정이길 기도해 본다.”
실리콘밸리뱅크(SVB)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12일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팔 것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걱정과 탄식의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일부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한다.
SVB 사태가 촉발한 경제 충격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를 덮쳤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국채, 금, 엔화를 살 돈을 주식시장에서 조달하면서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급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0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45%, 나스닥지수는 1.76% 떨어졌다.
국내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 신용리스크, 가계부채,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한폭탄에 불이 댕겨지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실물경제 침체 상황이라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글로벌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에서 10일(현지시각) 발생한 SVB 사태에 대해 집중 점검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경제수석이 참석했다. 경제·금융 수장들은 “아직까지는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면서도 “글로벌 금융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곳곳이 시한폭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업대출 잔액은 1170조3145억 원이다. 연간으로 104조600억 원 증가하면서 2020년(107조4000억 원) 이후 최대로 늘었다. 한계기업도 급증추세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부감사법을 적용받는 비금융기업 2만2388곳 중 한계기업은 2021년 기준 2823곳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2283곳)보다 23.7%가 더 불어난 것이다. 연말까지 기업들이 갚아야 할 회사채는 약 48조3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A등급 이하 비우량채가 15조2000억 원에 이른다.
가계신용도 부실이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식 집계하는 가계신용 잔액은 2월 말 기준 1050조7000억 원 규모다.
금융권을 흔들 수 있는 부동산 부실 규모도 눈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PF 등 한국 부동산 그림자금융은 876조 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기업 신용리스크나 가계부채는 언제든 금융 시스템을 흔들 수 있고, 외국인이 투자자를 내몰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영국과 크레디스위스 은행의 예에서 보듯 국제 투기 세력은 취약점을 보이는 나라부터 공격한다. 한국은 이미 ‘약한 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심한 원화 가치 하락, 코스피 부진이 그런 정황을 보여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은행 중에 SVB나 실리콘밸리에 익스포져가 있는 곳이 없다”면서도 “글로벌 각국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점검할 것으로 보여 국내 대응 상황을 재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글로벌은행부장은 “리먼사태가 글로벌 은행권 전반의 위기로 확산한 데는 당시 취약한 재무상황도 문제였지만, 본질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의 위기’였다”면서 “향후 은행권 전반에 대한 신뢰도 변화 여부가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