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날 농심, ‘불그리’ 상표권 출원 “너구리 상표권 보호 차원”
BTS(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팬클럽 아미(A.R.M.Y)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위버스(Weverse)에 ‘불그리 레시피’라는 자신만의 라면 레시피를 공유하자, 같은날 농심은 특허청에 ‘불그리’를 출원해 상표권 선점에 나섰다.
20일 본지 취재 결과 농심은 이달 16일 특허청에 ‘불그리’, ‘불구리’ 상표의 특허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양식품 ‘불닭시리즈’와 농심 ‘너구리’의 합성어로 추정된다. 해당 분류는 곡분 및 곡물조제품, 빵, 과자로 라면을 염두에 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불그리’는 정국의 레시피로 알려진다. 정국은 16일 새벽 6시께 팬커뮤니티 위버스에 ‘불그리 레시피’ 제목으로 라면 요리법을 업로드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정국은 “물 650㎖에서 680㎖ 정도 알아서 냄비보다는 프라이팬에 붓고 열을 올린다. 물이 끓기 전에 불닭 액상 소스 하나 다, 너구리는 분말 반에 건더기를 넣어준다(불닭건더기는 마지막에)”라는 글을 올려 삼양식품 불닭볶음면과 농심 너구리를 조합한 모디슈머 레시피를 공유했다. 모디슈머(Modify+Consumer합성어)는 기존 메뉴를 수정해 독창적인 레시피를 탄생시키는 소비자를 뜻한다.
농심 관계자는 “BTS 정국이 직접 소개해 큰 화제가 된 만큼 무분별한 상업적 활용을 막고자 너구리 상표권 보호 목적으로 출원한 것”이라며 “기업이 통상적으로 하는 보호 차원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라면업계에서는 개인 레시피를 상표권으로 신청한 농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불그리’는 불닭볶음면과 너구리 제조업체가 각각 삼양식품과 농심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실제 제품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출처가 애매한 레시피 상표권을 선점한다지만, 불그리는 삼양식품이나 농심이 아니라 레시피를 처음 알린 BTS 멤버가 보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재 농심은 불그리 제품화 계획은 없다. 회사 관계자는 “예전 비슷한 사례로 ‘불파게티’나 ‘불라면’을 출원했지만, 상표권 등록 이후 실제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 라면의 경우 작년 상표권 출원 29건 중 제품화 사례는 2건 뿐이다”라며 “‘불그리’ 상표권 출원은 매운 것을 뜻하는 ‘불’ 접두사와 너구리 제품 네이밍이 결합돼 해외 경쟁사 등이 제품을 출시해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라면업계의 상표권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엔 서로 다른 제조사 제품을 조합한 모디슈머 열풍에 상표권 선점을 위한 눈치 대결이 치열하다.
라면업계 1위 농심은 모디슈머 유행에 가장 화제가 되는 업체다.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만큼 대부분의 모디슈머 제품에 농심 제품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농심은 영화 기생충이 등장해 화제를 모은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의 상표권을 보유하고, 2020년에는 ‘짜파구리 컵라면’을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카레와 농심 너구리의 레시피를 구현한 ‘카구리’가 인기를 얻자 아예 ‘카구리’ 봉지면에 이어 큰사발면을 내놨다.
또 농심은 ‘카구리’의 상표권을 2019년 출원해 지난해 등록을 마쳤다. 농심 신라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의 합성어인 ‘신나사끼’는 삼양식품이 출원한 상태다.
지난해엔 상표권을 놓고 농심과 오뚜기의 신경전도 있었다. 작년 4월 농심은 ‘짬뽕’과 ‘미슐랭’을 합성한 것으로 보이는 ‘짬슐랭’과 비빔면을 뜻하는 ‘비슐랭’ 상표권을 출원했다.
문제는 한 달 앞선 3월 오뚜기가 농심이 출원한 상표와 유사한 ‘짜슐랭’ 판매에 이미 돌입했다는 점이다. ‘짜슐랭’은 농심 짜파게티를 겨냥해 오뚜기가 출시한 신상품으로 ‘짜장면’에 ‘미슐랭’을 더한 합성어다. 이외에도 라면과 미슐랭의 합성어인 ‘라슐랭’의 상표권은 팔도가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