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목적 대신 취사ㆍ 창고 등으로 악용
취사와 난방 등 대형화재 우려도 커져
집회 소음 규제 강화…천막도 규제해야
집회와 시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불법 천막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주요 기업 본사 건물 앞에는 불법 천막시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사실상 '고정 시설물'로 여겨지고 있다.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21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천막 시위의 진짜 문제는 집회나 시위가 아닌 장기 거주, 불법 알박기, 취사, 집회도구 보관 창고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위 참가자들이 천막 안에서 거주하며 '장기 시위'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각종 안전사고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대부분의 천막이 차로 인근이나 도로, 인도 등에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통행에 장기간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의 강제 철거 등을 막기 위해 시위 참가자들이 열악한 천막 안에서 24시간 노숙하거나 집회 및 시위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장시간 거주하면서 각종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천막 안에는 집회·시위와 상관없는 취사와 난방도구는 물론 인화물질 같은 위험물질이 반입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한 단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강제 철거되기까지 46일 동안 불법 천막을 설치했으며, 서울시에 따르면 이 기간 천막에 야외용 발전기, 가스통, 휘발유통 등이 반입됐다.
또한 주간에는 100~200명, 야간에도 40~50명이 상주하다 보니 천막과 관련한 각종 민원이 205건에 달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앞 보도에 천막을 설치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의 사례도 유사다. A씨가 설치한 천막 안에는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스 등이 버젓이 놓여 있기도 했다.
이처럼 인화물질로 인해 불법 천막은 화재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천막 내에 난로를 피우는 경우가 많아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더구나 천막의 소재가 대부분 화재에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소화기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이 날 경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소화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위자가 천막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진압이 불가능해 화재가 확산될 우려가 크고, 인근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사옥 앞 보도에서 천막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는 주로 출퇴근 시간에만 시위를 하면서도 불법 천막을 9개월째 철거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인근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시야도 가려 교통사고 위험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7년부터 7년여년간 복직 투쟁을 벌여온 B기업 노동자들은 서울시 중구 B기업 본사 앞에서 24시간 천막 농성을 벌이면서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압력밥솥과 고무파이프를 이용해 임의로 난방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 증권사 노조는 두꺼운 비닐을 덧댄 천막 안에서 등유난로를 피우면서 겨울철 농성을 이어갔다.
지난 2013년 C기업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 앞에 설치한 농성 천막은 방화로 화재가 나 천막 한 동이 전소되는 것은 물론 덕수궁 담장 서까래까지 그을리는 등 큰 피해가 발생하는 등 자칫 국가문화재까지 소실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수년동안 시위 천막이 설치됐던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 거주 중인 김모씨는 “한겨울 심야에 천막 근처를 지나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도로나 인도를 막고 설치된 시위천막은 자유로운 보행을 방해하고 교통사고 유발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집회·시위용 천막이 도로법상 점용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설치물인데다 목적과 다르게 악용되면서 시위 참가자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천막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설치를 제한하는 법령은 없는 상태다.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보도나 차도 등에 설치된 불법 천막의 경우 도로법에 의해 지자체의 행정조치 또는 민·형사 소송 등을 통해 제한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자체는 불법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집회·시위자들과 충돌을 우려해 먼저 자진철거 요청을 하지만, 이에 응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계고장(강제집행 알림)을 통지하더라도 시위자들은 대부분 버티기로 일관하며, 행정대집행에 나서면 행정기관이 집회·시위를 방해한다는 억지와 집회·시위자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철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행 집시법상 천막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소음 등과 달리 집시법 개정 추진 시 천막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확성기 사용(소음)’에 대해서는 집시법상 이를 제한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고, 소음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취지의 입법안이 21대 국회에만 총 9개가 발의돼 있는 반면 시위 천막을 규제하는 입법안은 전무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집시법 차원에서 천막 설치를 제한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천막은 현수막이나 확성기와 달리 집회나 시위의 목적과 의도를 표현하는데 전혀 관련이 없는 시설물인데다, 우리나라 불법시위의 핵심 시설물이 되어가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을 통해 시민들뿐 아니라 시위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천막 설치에 대해 구체적인 제한 규정을 마련할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