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수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함정수사’입니다. 마약 거래가 외부의 눈을 피해 다크웹과 사회관계망(SNS)에서 이뤄지는 만큼 이를 잡기 위해서는 일반인으로 위장해 마약상에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함정수사가 오히려 범행을 유발하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의 권유로 인해 관심도 없던 마약에 손을 대게 되는 건 아닐까요? 함정수사가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와 위법성 논란 등을 살펴봤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는 크게 강제수사와 임의수사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강제수사는 법과 규정에 따라 진행돼야 합니다. 임의수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함정수사는 법적 근거가 필요 없는 임의수사입니다.
마약범죄 함정수사는 법적 근거가 없지만 아동‧청소년 성범죄 함정수사는 다릅니다. 2021년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며 ‘n번방 방지법(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그간 아동‧청소년 성매매‧성범죄 재판에서 함정수사 위법성이 종종 논란이 되고 경찰들이 징계를 받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했다”며 “이러한 까닭에 적극적으로 범행을 적발하기 위한 확실한 근거를 법으로 보장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약범죄는 이러한 관련 법령 없이도 함정수사라는 방식의 임의수사가 가능합니다. 기존에 법원에서 만들어 놓은 판례들이 있는데 그 선을 지키며 수사하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최근 마약 수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검찰 역시 함정 수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조사부장은 13일 ‘주택가 대마재배 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검찰은 이미 위법성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위장수사를 하고 있다”며 “경찰에서도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해 위장수사를 하고 있는데 검찰도 마약 심각성을 고려해 제도적으로 뒷받침 된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함정수사가 위법 여지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같은 함정수사라고 할지라도 형태에 따라 위법성을 다툴 수 있습니다.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본래 범행을 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기회만 준 것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범의유발형’은 의사도 없는 사람에게 범행을 하게끔 부추기는 경우로 위법성이 있습니다.
이미 마약을 판매하고 있는 유통상에게 “나에게 마약을 팔아달라”라고 하는 것은 기회제공입니다. 반면, 타인에게 마약을 권유하면 범의유발이 됩니다. 단순 권유 수준이 아닌 강한 설득, 유혹이 있어야 하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마약을 하게끔 하는 경우입니다. 마약을 끊은 지 10여 년이 넘은 사람에게 “마약을 구해달라”고 하는 것 역시 범행유발입니다.
마약 관련 범죄는 조직적이고 은밀해 적발되기 어려운 만큼 법원에서도 함정수사의 필요성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이창현 교수는 “불법을 합법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함정수사에 대해서는 위법의 범위를 좁혀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수사기관에서 실적을 채우기 위해 함정수사를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합니다. 이 교수는 “수사기관과 연결돼 사건을 찾아오는 외부 ‘정보원들’이 종종 실적을 올리고 수고비나 성과급을 받기 위해 범의유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마약범들과 함께 마약을 투약해 놓고선 함정수사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