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재의 부결돼도 의료법 개정해야…사실상 간무협 승리, 의협은 실익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잠정 보류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와 대한간호협회(간협)의 대응방향은 재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당·정은 재의 부결 시 간호사 처우 개선,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조항 폐지 등 공감대가 이뤄진 사항들에 대해 대체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간호조무사 학력상한, 당·정협의에서 검토”
간호법 재의 결과와 무관하게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은 개선이 필요한 과제라는 게 정부 인식이다. 간호법에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은 고등학교 졸업학력 인정자 또는 간호조무사양성학원 등 수료자다. 고졸 이상 학력자도 양성학원 등을 수료하면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으나, 응시자격이 고졸인 탓에 초과 학력은 의미가 없다. 사실상 ‘학력 상한’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간호법의 간호조무사 응시자격 조항이 현행 ‘의료법’ 조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란 점이다. 간호법이 재의 부결돼도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은 유지된다.
학력 상한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가 가장 반발했던 사안이다. 당·정이 윤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던 이유 중 하나도 학력 상한조항의 불합리성이다. 다만, 대체입법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단독개원’ 우려를 낳았던 ‘지역사회’ 문구와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을 삭제하고 법안 명칭을 ‘간호사법’으로 바꾼 대체 간호법을 제정하는 방식, 간호법을 폐기하고 의료법 등 기존 법률을 개정해 간호사 처우 개선을 법제화하고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을 폐지하는 방식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변수는 간협의 대응이다. 간협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원안 공포·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미비점은 공표 후 시행까지 유예기간 중 개선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얻은 게 없는 의사협회
간호법 거부권 행사는 사실상 간무협과 의료기사들의 승리다.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를 구성해 간호법 저지 투쟁을 주도했던 의협은 얻은 게 없다.
당초 의협은 윤 대통령에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 모두에 거부권 행사를 요구해왔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총파업을 강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보건복지의료연대의 대응은 ‘유감 표명’에 그쳤다. 17일로 계획했던 총파업은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은 보건복지의료연대에 소속된 단체 간 이해관계가 다른 데 기인한다. 13개 단체에 소속된 직역 중 의료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의료인’은 의사와 치과의사뿐이다. 의료기사 등 비의료인은 굳이 의료법 개정안을 이유로 단체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의협과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로선 다른 직역단체의 지원 없이 단체행동에 나서는 게 부담이다. 결과적으론 다른 직역단체의 지원을 받고자 의협·치협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간호법에 집중한 대가로, 의협·치협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준 모양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