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에너지 정치와 기우제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2분기 에너지 요금이 소폭 인상으로 일단락됐다. 2분기 시작 전에 3월 말엔 요금을 결정했어야 했는데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15일 전기요금은 ㎾h 당 8원, 도시가스 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인상으로 결정했다.
당시 국민의힘과 정부는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 국민이 요금인상에 납득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란 주문을 했다. ‘요금을 올리지만, 우리도 이렇게 자산을 매각하고 뼈를 깎는 자구안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국민에게 보여주란 이야기다. 그래야 국민의 저항이 적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즉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을 고려한 조치로 읽힌다. 내년 4월이면 총선이고 사실상 총선 레이스가 시작됐으니 지지율을 신경 써야 하고 이는 포퓰리즘으로 연결된다.
원가보다 싸게 전기와 가스를 공급해서 발생한 적자인데 ‘납득할 수 있는’이란 조건을 내건 점은 잘 이해가 안 된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전기요금과 한전 관련 “한전이 민간 기업이었으면 도산했을 것”이라고 비판한 뒤 “도산하면 월급 깎는 게 아니라 날아간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에너지 또는 공기업 담당 기자들은 ‘민간 기업 같으면 진작에 요금을 올렸을 것이다’, ‘민간 기업은 원가보다 싸게 물건을 팔지 않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한 총리도 한국의 전기요금이 싼 편이고 인상의 필요성을 전제하고 한 말이다.
에너지요금에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요금 결정 과정이 더 혼탁해지는 것 같다. 에너지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결정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당정 협의를 거쳐 요금안을 내놨다. 뒤에 있던 정치권이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 ‘정치권이 에너지요금 판에 끼어들면 그들에게 어떤 이점이 있을까’란 생각을 잠시 했던 적이 있다.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귀신같이 아는 부류 중 한 곳이 정치권이다. 물론 잘못된 판단으로 정치생명에 타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전기·가스요금은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치권이 끼어들었다? 아 요금을 동결하거나 최소화해서 국민 편익이 발생하고 그걸 우리가 했다’ 이런 인식을 남기기 위해서란 결론을 내렸다. 물론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국제 에너지 가격이 전기요금 등에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 대선을 앞둔 재작년에도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분 일부만 전기요금 등에 반영됐다. 정권마다 에너지 요금을 마치 자신의 주머니의 동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요즘 에너지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기우제’가 생각나기도 한다. 과거 통치자들이 가뭄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이 기우제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한 달이던 두 달이던 석 달이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니 당연히 성공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기에제(祈 energy祭)를 지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떨어지면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는 그런 전략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전략도 과연 현재 지구촌의 상황에서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보호주의, 자원 전쟁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 그런 나라의 비정상적인 에너지요금 체계가 에너지 수요를 자극하기도 한다. 적절한 요금 인상은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수요 조절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싸게 전기와 가스를 사용하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없다’, 안 올린 전기요금, 가스요금의 대가는 언젠가 세금이던, ‘n빵’이던 치러야 한다. 그게 지금이 아닐 뿐이다.